키이우 앞 진군 멈춘 러시아 군, 총공세 전 재정비? 작전 실패?

입력
2022.03.04 18:05
N면
러군, 키이우 25㎞ 지점에서 나흘째 진군 멈춰
식량·연료 부족에 우크라이나 저항도 거세
2차 협상 '인도주의 통로' 합의...총공세 나서나
대규모 지상군 시가전 앞두고 민간인 걷어내기?
헤르손·멜리토폴 이어 마리우폴도 함락 위기
우크라이나와 흑해 분리하는 남부 공략 집중

총공세를 앞둔 전열 재정비인가 아니면 작전 실패인가. 장장 64㎞의 러시아군 호송대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불과 25㎞ 앞두고 나흘째 멈춰서면서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키이우에서의 교전이 소강 상태인 가운데 러시아군은 동남부 헤르손과 멜리토플을 잇따라 점령하고 마리우폴을 포위하는 등 남부 지역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자포리아 원전도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에 넘어갔다.


①식량ㆍ연료 부족 ②우크라이나 저항 ③전략 변경

러시아군은 지난달 24일 개전 이후 가장 먼저 수도 키이우로 향했다. 벨라루스에서 출발한 러시아군 호송대는 지난 1일 키이우 코 앞까지 와 진군을 멈췄다. 침공 9일째인 4일에도 호송대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러시아군의 포격도 잦아들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군에 식량과 연료, 탄약, 무기 등을 공급하는 병참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군의 움직임이 정체된 상태”라며 “여러 이유 중 물자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벨라루스에서 합동훈련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면서 식량과 연료 등이 바닥났고, 이를 보급받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맘때쯤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면서 진흙탕이 돼 군용차량이 쉽게 이동하기 어렵다는 점도 언급됐다.

우크라이나의 완강한 저항도 진군을 막고 있는 이유로 꼽혔다. 당초 속전속결로 키이우를 함락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우크라이나의 항전에 가로막혔다. 영국 국방부는 “키이우로 향하던 러시아군 호송대가 강력한 저항과 기계적 고장, 물자 공급 지연으로 진군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간에 수도를 장악해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수립하려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러시아가 전략을 변경해 총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숨 고르기를 위한 일시적인 진군 정지일 것이라는 얘기다. 우크라이나와 지난 3일 진행한 2차 협상에서 선뜻 ‘인도주의 통로’를 만들기로 합의한 것도 대대적인 지상군 전면전에 앞서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민간인을 빼내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민간인이 빠진 뒤 압도적인 우위로 해당 지역의 상대 병력을 전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커비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의 저항도 영향을 줬지만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벌기 위해 진군을 멈췄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흑해 분리’ 남부 공략 집중

러시아군은 눈을 돌려 남부로 향하고 있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따라 지난 3일 남부 전략 요충지인 헤르손, 멜리토폴을 잇따라 점령하고 아조프해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포위했다. 마리우폴에서는 4일 러시아군의 포격이 이틀째 계속되면서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통신시설도 마비됐다. 민간인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집중 폭격을 당하고 있는 마리우폴이 함락될 경우 러시아는 크림반도에서 돈바스 지역까지 육로 회랑을 확보하게 된다. 남부 지역의 군사적 조건도 유리하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가 8년 전 병합한 크림반도를 통해 러시아군이 북부에서 겪는 것과 같은 병참의 어려움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에 이어 남서부 조선산업 중심지인 미콜라이우와 오데사에 대한 공세 수위도 높아질 전망이다. 이미 러시아군은 로켓발사대를 포함한 군용차 800여 대를 끌고 미콜라이우를 포위하고 있다. 올렉산드르 센케비치 미콜라이우 시장은 “헤르손을 장악한 러시아군이 미콜라이우로 향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도시 내부에 포격은 없었지만 도시 외곽에서 장거리 로켓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헤르손과 미콜라이우 간 직선거리는 약 60㎞에 불과하다. 오데사 인근 해안에도 최소 8척의 러시아 군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겐나디 트루하노우 오데사 시장은 “러시아가 육·해군을 동원해 오데사를 포위한 후 우크라이나의 흑해 접근을 막고 러시아 점령 지역으로 삼으려 한다”고 우려했다.

강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