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포로 사진 올리는 우크라 정부…"국제 재판 불리해질 수 있어"

입력
2022.03.04 18:36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군인 모자이크 없이 게시
'전쟁 참상 러시아 시민에 알리겠다'는 목적이지만
제네바 협약 위반 가능성 있어

우크라이나 정부 관료들이 최근 '전쟁의 참상을 알리겠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리는 러시아군 사진이 국제 재판에서 우크라이나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모자이크 없이 포로의 사진을 대중에 공개하는 건 제네바 협약 위반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을 조장하기 위해 최근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러시아 군인들의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엔 부상당한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나와 있다. 화재나 총격 등으로 사망한 시체의 모습도 그대로 담겼다. 몇몇 게시물엔 생포된 러시아 군인들이 가족과 통화를 하며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고 울거나 “군사훈련인 줄 알았다”며 토로하는 모습이 담겼다. ‘침략자’ 러시아군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장면도 게시됐다. 이런 게시물 모두 성인 인증 등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련 채널뿐 아니라 전·현직 관료들의 개인 SNS에도 비슷한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전직 우크라이나 외교관의 트위터에는 연일 미사일 공격을 받았거나 탱크에 깔리는 등 참혹하게 죽은 군인과 민간인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출처 표시 없이 게시되고 있다. 20만 명이 넘는 계정 팔로워들은 해당 게시물을 리트윗하며 실시간으로 반응을 공유 중이다.

우크라이나 관료들은 이런 게시물을 통해 러시아 시민들에게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알릴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침략군 격퇴 게시물로 국민과 군의 사기를 높이고, 침략자에게도 온정을 베푸는 게시물로는 ‘우크라이나는 잔혹한 러시아와 다르다’는 인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제네바 협약 위반으로 되레 우크라이나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각국 정부는 언제나 전쟁 포로들을 폭력과 모욕,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 제13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무차별 공격에 비하면 우크라이나의 포로 공개는 작은 잘못이지만, 국제 재판에선 이런 논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레이철 반랜딩엄 미국 사우스웨스턴대 로스쿨 교수는 "국제법에선 '저쪽이 잘못을 했으니 우리도 해도 된다'는 식의 주장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필사적인 심정이라도 명백히 금지된 행위를 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다음 주로 예정된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청문회나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관련 조사에서 러시아의 책임을 강하게 묻기 위해선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부상당한 포로의 모습을 온라인에 게시하는 행위가 제네바 협약 위반으로 지적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9년 파키스탄 정보통신부는 자국 영공에서 격추한 인도 전투기 조종사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국제적 비난을 받고 삭제한 바 있다. 2003년 미국ㆍ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이라크 측이 처참하게 사망한 미군 시신과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한 미군 포로 5명의 모습을 공개해 미국이 제네바 협약 위반을 들어 반발하기도 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