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도 벌써 일주일 넘는 시간이 흘렀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 짧은 시간 동안 웹을 통해 흘러다니는 수많은 정보를 접했다. 그중에는 어처구니없는 가짜 뉴스가 대부분이었으나(예를 들면 파키스탄이 러시아 차관을 갚지 않는 방식으로 경제 제재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저 먼 땅에서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만 해도 충격적이었다.
진격이 일정에 맞춰 이루어지지 않아 다급해진 러시아군이 민간인 구역에 포격을 가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린이가 피를 흘리는 사진을 보았다. 그 참혹한 시간에 영웅적으로 항전하는 우크라이나의 시민들과 그 지도자를 보았다. 내가 살고 사랑하는 도시가 전쟁터가 되고, 내 이웃이 파편에 맞아 쓰러지고, 나 또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싸우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푼을 기부하고 우크라이나에 조속히 평화가 찾아오기를 온 마음을 다해 기원하는 것뿐.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희망을 품기가 쉽지 않다. 국제 항공기가 러시아를 통과하지 않게 되면서, 앞으로는 소련이 건재하던 때처럼 비행기가 돌아돌아 가는 항로를 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끝장나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끝났던 냉전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 같아서 두렵다.
그런데 나를 더욱 소름 끼치게 하는 것은 이 모든 공포가 푸틴이라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미 정보당국이 푸틴이 예측불가능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정신상태를 보인다고 보고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정신상태에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상태라 참모들이 솔직한 의견을 낼 수 없으리라는 의견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흘 전, 크렘린궁에서 개최된 국가안보위원회 기록 영상을 보니 그가 스스로를 고립 상태에 두고 있는 건 맞다 싶었다. 푸틴이 러시아의 해외정보국장을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영상이었다. 국장은 푸틴의 의견에 반하는 듯한 말을 하자,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인정하냐고 물은 다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겁박했다. 국장은 말까지 더듬으면서 꼬리를 내렸다.
나는 왜 역사 속에서 모든 독재자들이 필연적으로 그토록 깊은 광기에 빠졌으며, 세상을 항상 도탄에 빠뜨렸는지 알았다. 오랜 세월 동안 권력에 익숙해진 독재자 근처에는 예스맨만 남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목숨줄을 잡고 있는 독재자를 거스르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존재하더라도 곧 실각하거나 숙청될 것이고.
지금 우리 모두는 한목소리로 푸틴을 비난한다. 그러나 머지않은 과거에, 나는 푸틴이 보이는 그 강력한 지도자상을 선호하는 목소리가 꽤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강인한 이성만으로 국가를 이끄는 '철인 지도자' 따위는 없다는 것을 목격했다.
이제 우리 국가의 대표를 뽑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의 지도자를 직접 선출하기에, 그래서 지도자가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아주 큰 자랑이다. 누가 선출되든 간에, 우리 새 대통령이 우리 자랑스러운 공화정의 전통을 유지하고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