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막론하고 올해 상반기를 정점으로 차츰 안정될 것으로 예측했던 인플레이션의 흐름이 예상 못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완전히 뒤집히고 있다. 각종 공급차질 같은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이 잦아들기를 고대하던 시점에서,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처인 러시아의 전면봉쇄는 연쇄적인 물가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어서다.
수위를 높여 장기화될 석유 등 원자재 수급난과 고물가는 우리 경제 엔진인 수출은 물론, 내수 회복과 경제 전반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3일 외신과 경제계에 따르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2일(현지시간) 미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매우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할 것 같다. (물가가) 더 높아지면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간 미 뉴욕 월가 전문가들은 최근 7%대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1분기를 정점으로 차츰 수위를 낮출 것으로 전망해 왔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고물가 상황을 올해 지속될 '상수'로 인정하며 이에 대한 대비를 강조한 것이다.
올해 국내 물가도 당초 전망은 '상고하저'였다. 기획재정부는 연평균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를 배럴당 73달러로 전망하며,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2%로 제시했다. 국책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 역시 올해 물가가 상반기 1.9%, 하반기 1.5% 상승으로 오름폭을 줄일 걸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런 물가 전망은 완전히 어그러지게 됐다. 한국이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는 각종 필수 원자재 가격이 미친 듯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달 28일 95달러대였던 두바이유는 2일(109.40달러) 110달러 돌파를 목전에 뒀다.
이는 단기간에 끝날 현상도 아니다. 원유, 천연가스, 곡물 등의 세계적인 수출국인 러시아에 대한 국제 경제제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상당기간 수요가 몰리는 원자재마다 가격이 고공행진할 공산이 크다. "국제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은 이런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10월(3.2%) 이후 벌써 4개월째 3%대에 머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곧 4%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짙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물가는 하반기에도 오르는 ‘상고하고’ 흐름을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품 원가를 끌어올리는 원자재 가격 상승은 수입은 물론, 수출에도 직격탄이다. 최대 수입품인 원유가격이 36.9% 뛰면서 2008년 겪었던 '연간 무역적자' 사태가 올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부채 급증에 무역적자까지 가시화하면 한국의 대외신인도마저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리 상승기와 겹친 고물가 장기화는 내수에도 불황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통상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물가 상승은 소득 감소로 여겨져, 소비 위축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물가 억제를 위해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사상 최대규모 가계부채의 상환부담까지 커져 민간소비는 더 위축될 수 있다. 무디스가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0%로 낮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지 않는 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