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후 '대통합' 외칠 후보들의 거친 입

입력
2022.03.04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예언가가 아니지만 난 정확히 엿새 뒤를 맞힐 수 있다. 대선 다음날인 10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뒤 서울 여의도 당사쯤에서 이렇게 외칠 거다. “과거 분열과 갈등을 끊고 국민 대통합을 이루겠다.” 서로 조율이 된다면 경쟁 후보 진영을 찾아 그 지도부와 악수를 나눌 거다. “앞으로 서로 존중하겠다. 야당과 소통하겠다.” 자체 해단식을 갖고선 이렇게 말할 거다. “우릴 지지하지 않으셨던 국민도 잘 챙기고 섬기자.”

선거 다음날은 이렇게 새로운 시대를 다지는 각오, 응원, 덕담, 위로의 언어로 점철하는 날이다. 누가 될지 모르지만 당선인의 말은 어느 현인보다 따뜻하며 어느 석학보다 정제될 거다. 새 시대를 향하려는 당선인의 각오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10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했다. 말의 성찬이 아닌 진실한 각오였다.

말에는 사람의 생각이 드러난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은 한 인간의 생각이 드러나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말은 전 국민을 향한 통치 메시지이기에. 이들이 ‘국민 모두의 목소리를 받들겠다’는 같은 말을 매번 반복하는 건 ‘대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을 알기 때문일 거다. 선거를 앞둘수록 네거티브보다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자성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분열과 갈등을 키우는 대통령의 말은 고스란히 국민에겐 불안이 된다. 박 전 대통령에게 독선과 독단의 그림자를 발견한 것도 그의 말에서였다.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2015년 11월10일 국무회의), “지금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다.”(2016년 7월14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치열한 논쟁이 필요해 보이는 현안인데도 박 전 대통령은 그저 ‘내 말만 옳다’는 메시지를 냈다.

야당에서 경남 양산 사저의 형질 변경 절차를 문제 삼자 “선거 시기라 이해하지만 그 정도 하시지요. 좀스럽고, 민망한 일”(2021년 3월12월)이라고 말한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억울함에 ‘울컥’하는 심경을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국민들에겐 ‘울컥’이 아닌 ‘버럭’으로 다가왔을 거다. 이 또한 ‘내 말만 옳다’는 메시지로 읽히기 충분했다.

‘내 말만 옳다’는 두 사람이 있다. 상대를 향한 욕설에 가까운 말을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누군가 흠집내기하는 말을 득표를 위한 정당한 노력으로 착각하는 것도 같다. 엿새 뒤 ‘대통합’을 외칠 가능성이 높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얘기다.

경쟁 후보의 사드 배치 공약에 “바보라서 그런가”라고 비아냥댄 이 후보는 국민의 절반을 바보로 만들었다. 여권을 “부패하고 무능하고 좌파 운동권 이념에 사로잡힌 패거리정치”라고 깎아내린 윤 후보는 남은 국민 절반에 색깔론을 입혔다. 지난 2일 밤엔 전 국민 앞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거짓말의 달인이니 못하는 말이 없다”(윤 후보), “부정부패 주가 조작하는 후보는 안 된다”(이 후보) 등 두 후보 사이에 오간 말들은 TV토론이 아닌 막장 드라마의 대사였다. 불현듯 내 예언이 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통합’의 ‘통’도 외치지 않을 기세다. 예언을 바꿀까 싶다. 피로감의 결과, 낮은 투표율이 나타날 것이라고.

김현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