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 없는 군대에서도 ‘님아 그 닭 먹지 마오’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 닭이 어떻게 커서 식탁에 오르는지 알게 되면 먹기 힘들 거라고요.”
대학생 김재원(26)씨는 치킨과 삼계탕을 먹지 않는다. 주변에는 닭 알레르기가 있다고 둘러대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치킨을 볼 때마다 육계 농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키우고 죽였던 닭이 떠오른다고 했다. “5년 전 여름방학 때 전북의 한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숙식 해결해주고 돈도 많이 준다길래 갔는데, 한 달 좀 넘었을 때 트럭 케이지에 닭을 싣는 상차까지 보고 군대로 도망쳤어요.”
김씨는 닭 사육 현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이 먹는 치킨은 ①한 달 동안 거의 못 자고 ②3.3㎡(1평)에서 70마리 이상 다닥다닥 붙어 지내며 ③횃대 한번 올라가 보지 못하고 죽은 닭으로 만들어진다. ④농장에 들어갈 때와 도계장으로 이동할 때 겨우 햇볕을 봤을 것이고 ⑤정상적인 닭이 아닌, 가슴에 살이 잘 찌게 개량된 ‘왕 비만 병아리’에 가깝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직접 찾은 육계 농장 세 곳의 모습도 비슷했다. 국민 간식 치킨의 재료인 닭은 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사육되는 걸까. '사육 단가' 때문이다.
지난 1월과 2월 잇따라 찾은 농가 세 곳의 첫인상은 비슷했다. 두꺼운 철문을 열자 30도에 달하는 뜨거운 수증기가 얼굴을 덮쳤다. 마치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 안경에 금세 김이 서렸다. 이어 암모니아 향이 코와 눈을 찔렀다. 닭 계분 냄새가 축축한 깔짚과 만나 시큼하고도 쿰쿰한 냄새가 났다. 간신히 입으로 숨을 쉬었지만 계사 내부에서 5분을 버티기 힘들었다. 계사 양 끝에 설치된 환기구 팬 3개가 외부 공기를 끌어들이는 유일한 통로였다.
계사 천장에는 전등 40여 개가 달려 있었다. 24시간 불을 켜기 위한 용도다. 육계 농가를 운영 중인 A씨는 “사실상 한 달 내내 불을 켜 둔다고 보면 된다. 그래야 닭이 낮이라고 착각해 사료를 계속 먹어 빠른 시간 내에 살을 찌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를 ‘종야 점등법’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대다수 육계 농가는 종야 점등법으로 닭을 키운다. 50g이 되지 않던 병아리들이 이곳에서 한 달 내내 잠자지 않고 계속 사료를 먹다 보면 1.5㎏ 이상으로 불어나게 된다.
불이 꺼질 때가 있긴 하다. 하림과 마니커 등 '인티그레이션'(인티 회사 또는 계열회사)으로 불리는 닭 공급사가 사육된 닭들을 도계장으로 데려가기 위해 철망이 설치된 트럭에 옮겨 싣는 ‘상차’ 시기다. 닭들은 어두워지면 움직임이 둔해져 도망가지 않게 된다. 상차반(상차를 전담하는 노동자)이 쉽게 다리를 낚아채 트럭 케이지에 실을 수 있도록 이때만 불을 끄는 셈이다.
1,650㎡(500평) 정도 되는 계사 한 곳에서 키우는 닭은 3만5,000~4만 마리다. 3.3㎡(1평)당 70~80마리가 모여 있는 것이다. 농장 곳곳에 빈 공간이 있긴 했지만, 닭이 자유롭게 날개를 펴고 움직이기엔 한참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닭들은 서로 부딪치고 깔아뭉개기 일쑤다.
농장 세 곳에선 모두 횃대를 볼 수 없었다. 닭은 어두워지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습성이 있는데, 계사 내부에 닭이 올라갈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횃대를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설치비와 관리비가 만만치 않은 데다, 돼지처럼 살이 붙은 닭이 횃대에서 떨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농가 입장에선 그 역시도 '비용'이라는 것이다.
환기 팬은 쉴 새 없이 돌아갔지만 암모니아 특유의 톡 쏘는 냄새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닭을 키우는 공간이 모두 창문이 없어 햇볕이 들지 않도록 설계된 ‘무창계사’ 형태이기 때문이다. 문을 활짝 열어 환기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농가에선 "그것이 오히려 닭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육계 농장을 운영하는 김모(39)씨는 “닭은 온도 조절 기능이 없어 추위에 약하다”며 “무창계사는 창문이나 문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지 않아 온도와 환기를 확실히 조절할 수 있어 닭들에게 더 좋다”고 말했다.
농장 곳곳에는 다리가 부러져 엎드려 있거나 크기가 작은 닭들도 있었다.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을 하는 닭도 보였다. 생존 경쟁에서 뒤처진 닭은 아직 살아 있는 개체를 위해, 그리고 농가 수익을 위해 죽임을 당한다. 도태된 닭은 1㎏을 살찌우는 데 더 많은 사료를 필요로 하고, 생산 지수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사료 요구율과 생산 지수는 농가가 닭 공급사로부터 받는 인센티브와 직결된다.
그래서였을까. 4년간 축산 농가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노동에세이집을 펴낸 작가 한승태는 자신의 저서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온 세상이 어두워지면 선택받은 닭들은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반대편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지상에 남은 닭들에겐 끔찍한 최후가 다가온다. 이 닭들이 지은 죄는 명백했다. 충분히 살이 찌지 못한 죄. 판매 가능한 상품이 되지 못한 죄. 비싼 사료를 낭비한 죄.”
농장 주인도 마음이 편치 않다. 육계 농장 주인 김씨는 “아픈 닭을 계사 안에 내버려두면 전체적으로 닭 사육 성적이 안 좋게 나온다”며 “경쟁에서 뒤처진 닭들은 건져서 플라스틱 박스에 넣고 죽기를 기다리면서 사육일지에 기록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남은 닭들의 운명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간신히 살아 남은 닭들도 도계장으로 가면 전기나 가스에 의해 대량으로 죽임을 당한다.
경기 가평군에서 육계 농장을 운영하는 B씨도 “대량 사육되는 닭들은 품종 자체가 빠르게 살찌도록 만들어져 다리 힘이 몸통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방생해 준다고 해도 오래 살지 못하고 잡아먹히거나 굶어 죽는다”고 했다. B씨는 그러면서 “살찌우는 공장에 살게 해서 미안하고, 다음 생에는 자유롭게 오래 살라고 기도하마. 서글프지만 이것이 내가 닭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상의 배려”라고 전했다.
닭의 자연 수명은 8~10년이지만, 고기를 얻기 위해 길러지는 육계는 한 달 남짓 숨을 쉰 뒤 치킨이 된다.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돌아다니고, 본성대로 횃대에도 자주 올라가며 살 수는 없을까.
농가에선 고개를 저었다. 국내 육계 농장 운영이 마리 ‘수’를 기준으로 돌아가다 보니, 동물 복지는 전혀 신경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정된 계사 공간에서, 적은 사료로 얼마나 많은 닭을 빠르게 살찌워내느냐에 따라 돈을 받기 때문에 동물 복지는 먼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축산 전문가들은 사육 방법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정주 건국대 생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빽빽한 공간에서 닭들에게 사료를 쉴 새 없이 먹이고 잠을 안 재우는 것은 동물 학대나 다름없는데 모두들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재훈 전 경북도립대 축산과 교수(부성 스마트팜 대표)도 “1980년대부터 육계 산업이 계열화되면서 단시간에 살찌게 하는 방법이 중요해졌고, 인공적으로 점등 사육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며 “동물 복지를 하고 싶은 농장이나 닭 가공회사들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