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그래도, 다시 또

입력
2022.03.04 04:30
6면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편집자주

20대 대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소박하지만 당찬 바람들을 연쇄 기고에 담아 소개합니다.


과연 어떤 기분으로 3월 10일의 아침을 맞게 될까. 뿌듯한 희망과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느끼게 될까.

87년산 K-대통령직선제와 함께 성인이 된 세대의 하나라 그런지 대선과 그 결과를 맞은 날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중에서도 1997년, 2002년, 2017년 같은 경우보다는, 쓴 입맛과 숙취가 더해진 우울감에 몸 가누기도 힘들게 느껴졌던 대선 다음 날의 기억들이 더 생생하다.

너무 오래된 1987년과 1992년의 경우는 생략하고, 2007년 12월 19일 저녁. 일찌감치 신촌 굴다리 밑 술집에 앉아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렸다. 애초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명박이 50% 넘은 득표를 한다는 예측을 보니 뭔가 가슴속에서 치밀었다. 방송에선 747의 희망찬 새 시대가 펼쳐질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만취했다. 2012년 12월 19일 저녁. 박사논문 심사가 있어 선후배 연구자들과 함께했다. 심사가 잘 끝나 편하게 한잔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모두 침묵 속에 대충 밥만 욱여넣고 흩어졌다. 그래도 억지로 버티며 술집을 전전했는데 마셔도 마셔도 안 취했다. 2007년과 반대였다. 다음날, 파업에 대한 사측의 158억 원 손배소와 함께 ‘희망 없음’을 유서에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청년 노동자 최강서씨의 부음이 들려왔다.

‘최악의 선거’가 끝나면 어떤 세상이 될까.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이 사회가 좋아질까. 아니면 소위 ‘정권교체’가 지난 5년의 환멸과 정체를 새 희망으로 바꿀까. 그런 기대들에 미치는 믿을 만한 주체와 세력은 있는가.

아마 많은 이들은 결과에 새삼 충격받을 것이다. 마치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이성과 지혜는 지각 아래에 잠겨 있던 ‘사태’의 진짜 모습을 보고야 쓰게 도착할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우리끼리 ‘좋아요’를 주고받던 집단적 오류와, 감정에 들떴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으리.

2012년 대선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겨울 날씨는 추웠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을 다지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했다. 세미나도, 젊은 친구들과의 대화도 다시 열심히 하자 생각했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기에, 잡지를 새로 만들고 또 공부를 새로 시작하는 모임들이 생겨났었다.

담담하게 투표장에 가고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 그래서 어떤 쪽이든 다시 공부하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또, 다시 그래야, 어떤 ‘최악’이라도 긴 역사 안에서는 에피소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