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을 보며 눈동자가 좀 커졌다. 배우 김혜수 때문이었다. 그가 연기하는 판사 심은석은 3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유치원 다니는 자녀가 하나 있어서다. 결혼이 좀 더 늦었으면 40대 초반 정도일 거다. 김혜수의 생물학적 나이와는 10년 정도 차이 나는 연령이다. 배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신의 나이보다 젊거나 늙은 배역을 맡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영화니까’ ‘드라마니까’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배우의 외모가 배역과 거리감이 있어서다. 김혜수와 심은석은 달랐다. 김혜수가 심은석이고, 심은석이 김혜수였다.
김혜수의 나이를 새삼 떠올렸다. 데뷔 시기가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5공 시절, 서울 아시안게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당시와 연관된 단어를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진다. 1986년 태어난 이들이 30대 후반, 심은석 또래다. 김혜수는 노화라는 단어와는 멀고도 먼 배우다.
김혜수는 연기를 시작한 16세 때부터 성인 역할을 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이후 그는 2000년대 초반 잠시 부침을 겪은 것을 제외하면 정상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줄곧 주연을 맡았고, 매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혜성처럼 나타나 혜성처럼 사라지는 스타들이 넘쳐나는 연예계에서 독보적인 행보다.
비결은 뭘까. 연기 스펙트럼이다. 다종의 장르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를 스타로 끌어올린 KBS 사극 ‘사모곡’(1987)부터 남달랐다. 17세 김혜수는 성인 선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조선시대 신분제를 넘어 사랑을 지키려는 심지 굳은 여성 보옥을 통해서였다. 그는 KBS 드라마 ‘순심이’(1988)와 ‘세노야’(1989) 등으로 다져진 이미지를 MBC 시트콤 ‘한지붕 세가족’(1992)이나 ‘짝’(1994~1998)으로 깨곤 했다. 정통 드라마에 강하면서도 웃음기 어린 연기에도 강세를 보였다.
김혜수는 영화보다 드라마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첫사랑’(1993)과 ‘남자는 괴로워’(1995) 같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으나 관객몰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석규랑 호흡을 맞춘 ‘닥터봉’(1995) 정도가 20대 시절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2000년대 들어 ‘신라의 달밤'(2001)과 ‘타짜’(2006)가 수백 만 관객과 만나고, ‘도둑들’(2012)로 1,000만 관객의 희열을 맛봤으나 흥행 빈도는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에서 여배우는 극한직업이다. 나이가 들수록 한계가 명확하다. 20~30대 제법 인기를 모았던 배우라도 40대 접어들면 주인공의 고모나 이모 역할이 주로 맡겨지고, 50대가 되면 더 나이든 역할이 주어지고는 한다. 여배우에게 유난히 가혹한 캐스팅 환경에서 김혜수는 히트작이 연잇지 않으면서도 1년에 1편꼴로 새 영화를 선보여 왔다. 모두 주연작이었다. 영화와 드라마에 매달려도 정상을 지키기 힘겨울 나이에 배우라는 주업을 벗어나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김혜수의 W’를 진행하기도 했다.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차례(1998년)를 제외하고 청룡영화상 시상식 진행을 맡아 왔다. 김혜수와 협업한 적이 있는 어느 영화제작자는 “김혜수 하면 관리와 진화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로맨틱코미디에 무리해서 출연하지 않는 등 자기 나이에 맞게 커리어 관리를 잘하면서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며 배우로서 신선도를 유지한다”는 의미에서다.
한 영화제작자는 김혜수에 대해 묻자 “애늙은이”라고 짧게 평가했다. 50대 초반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이다. 김혜수에 대한 옛 인상이 아직 남아 저리 표현했겠으나 곱씹어 보니 애와 늙은이라는 양면성이 특별했다. 때론 철 없이 보이는 어린 면모를 지니고 있으나 세상 보는 눈이 넓고 진지하면서도 생각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란 의미로 여겨져서다. 세상물정을 꿰뚫고 사는 비정한 여자 정 마담(‘타짜’)을 연기했다가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로맨틱한 금고 털이 펩시(‘도둑들’)로 변신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암흑가 보스(‘차이나타운’) 역할을 책임지기도 한 김혜수의 연기 이력을 수식하기에도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