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부가 첫 민주정부"라는 문 대통령, 7년 전에도 같은 말 했다

입력
2022.03.02 18:10
“김대중 정부가 첫 민주정부” 논란 
靑 “DJ 이전은 형식적 민주주의” 가세

대선을 앞두고 때 아닌 '민주 정부 적통' 논쟁이 달아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3ㆍ1절 기념사에서 “김대중 정부가 첫 민주 정부”라고 말한 것에 보수 진영이 격분했다. 노태우ㆍ김영삼 정부의 민주 정통성을 부정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2일 “김대중 정부 이전 정부(의 민주주의)는 형식적 민주주의”라고 야권을 다시 자극했다. 국민의힘은 “청와대의 정략적 편 가르기”라고 반발했다.

‘김영삼은 민주정부 아니다’ 문 대통령의 소신?

문 대통령은 "우리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힘은 단연코 민주주의"라며 "첫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 문화를 국내에 개방했다”고 말했다. 기념사 맥락을 보면, "첫 민주 정부였던"은 의도적으로 쓴 표현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오랜 소신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때 “(고인은) 민주화의 큰 산이다. 문민 정부를 통해 민주 정부로 가는 길을 연 그의 서거를 애도한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를 민주 정부로 가는 과도기로 봤을 뿐, 엄연한 민주 정부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 정부는 민주 선거, 이른바 수평적 정권 교체를 통해 출범한 정권을 일반적으로 가리킨다. 진보 진영의 정의는 보다 엄격하다. "군사독재와 명확히 선을 그어야 민주 정부"라고 본다. 군부 정권의 지지를 받아 탄생한 노태우 정부, 군사독재 세력의 정당(민정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출범한 김영삼 정부를 민주 정부로 호명하지 않는 배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 정부에 이어 4기 민주 정부를 열겠다”고 말해 왔다.

청와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수립된 정부는 민주주의 정부이지만, 내용적으로 실질적 증진이 있었다기보다 형식적인 민주주의였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선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고, 국제사회에 자신 있게 민주주의 국가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 정부라고 불렀다.

민주 정부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굳이 논란을 키운 것엔 '다른 뜻'이 있다는 의심을 샀다. 여권이 대선을 앞두고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만들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통합'을 말해온 것과도 배치된다.

야당 ‘편 가르기’ '이재명 밀어주기' 격앙

정부가 새삼 '민주주의 가치'를 역설하고 나선 것은 그런 의심을 키웠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일 국무회의에서 “(독재 정권에 맞선) 3ㆍ8 대전 민주의거, 3ㆍ15 마산 의거를 기념하는 행사가 연이어 개최된다”며 “이 땅의 위대한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자부심을 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선거대책본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망언을 넘어 폭언에 가까운 도발”이라며 “계산된 역사 왜곡으로 또다시 국민을 갈라치기하며 통합을 가로막은 문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다”고 했다.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뿌리를 말씀하신 것이니 크게 예민할 필요 없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고 했다. '민주 정부'는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를 지칭한 것이라며 수습을 시도한 것이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