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대응하기엔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북핵 문제는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을 관통했던 북핵 ·대미· 대중 외교 방식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대응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지속가능 솔루션’ 외교분과 위원들이 한국 외교의 현안들을 논의하면서 공통적으로 지적한 내용이다. 외교분과는 그간 △대북정책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미중대결 속 한국외교 △한반도 주변 강대국외교 등을 주제로 3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외교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될 수 있다"며 "차기 정부가 기존의 보수 및 진보 진영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선 북핵 문제와 관련, 여러 여건상 조속한 북미 대화 재개가 어렵기 때문에 대북 정책에 과도한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말고 주변국 외교와 균형을 맞추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대북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게 위원들의 제언이다. 외교분과위원장인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선 네거티브 의제인 북한 문제를 포지티브 의제로 바꿔야 한다”면서 ‘제2의 베트남론’ ‘성공한 아프간론’ ‘새로운 세계질서론’ 등 창의적인 국제담론을 만들어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정부 입장에서 북핵 문제는 잘못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 돌리기’의 네거티브 의제인데,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 큰 성과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담론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중 경쟁과 관련해서는 신중하면서도 유연한 접근법에 대한 주문이 많았다. 미중이 단기적으로 충돌 사안이 많지만 각자 국내 정치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미중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장기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중 어느 한쪽에 대한 일방적 줄서기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위험을 분산하는 헤징 전략과 소다자주의와 중견국 외교 등을 통한 연대 전략을 동시에 펴야 하다는 주문이다.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미중 선택의 문제를 독자적으로 대응하려는 국가는 없다.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연대 외교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친미 반중 구도를 너무 명확히 하면 우리 위상을 더 난처하게 할 수 있다”며 “미중 경쟁을 불러들일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미동맹 관계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전재성 교수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동맹 우선이냐 자주 우선이냐 따지던 식으론 더 이상 대미외교를 풀 수 없다”며 가치와 이익의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은 “한미동맹에 한 발을 굳건히 디디되 한중 및 한일관계나 다자외교에서 우리가 주도적 역량을 발휘하는 유연한 피보팅(Pivoting)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중 외교에 대해선 이동률 교수는 “미세먼지, 감염병 등 생활안보 영역에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