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촉발한 ‘핵 전력 공유’ 논쟁이 일본 정치권에서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핵 전력 공유란 자국 방위를 위해 영토 내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해 공동 운용하는 것으로, 지난달 27일 아베 전 총리가 TV 프로그램에서 이에 대한 “논쟁을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해 논쟁을 촉발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국회에서 두 차례나 ‘비핵 3원칙’을 강조하며 관련 논의를 부인했지만, 강경 우파 정치인들은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핵 전력 공유 논의에 대한 질의에 “비핵 3원칙을 견지해 나가는 입장에서 인정할 수 없다”며 “논의해 나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부정했다. 비핵 3원칙이란 '핵무기를 갖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기시다 총리는 앞서 지난달 28일에도 같은 입장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강경 우파 정치인들은 개의치 않고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1일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은 “(원칙의) 예외를 만들지 어떨지 논의하는 것을 봉쇄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자민당 후쿠다 야스오 총무회장도 “우리나라가 유일한 피폭국임을 감안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논의도 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파 야당인 일본유신회는 더 나갔다. 지난달 28일 비핵 3원칙을 “쇼와 시대의 가치관”이라고 폄하한 마쓰이 이치로 대표는 2일에는 핵 공유와 비핵 3원칙을 다시 검토하는 논의를 개시하자는 내용의 긴급 제언을 내놓았다. 아사히신문은 이에 대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핵이 없는 국가는 핵 보유국에 침략당할 위험이 크다”는 교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립 여당인 공명당, 유신회를 제외한 다른 야당은 핵 공유 논의에 부정적이다.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2일 당 의원 모임에서 “비핵 3원칙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일본공산당의 고쿠다 에이지 국회대책위원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베 전 총리 등의 발언은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범죄적인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오자와 이치로 입헌민주당 중의원은 아베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해 트위터에서 “이 인물은 어디까지 나라를 망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냐”며 “헌법을 부수고 핵을 배치하면 평화로워진다고 믿는 수준, 구제불능이다”라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