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빵 바구니’로 불린다. 밀과 옥수수 등 주요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젖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바구니가 무참히 깨졌다. 침략자 러시아 또한 곡물 수출 비중이 높다. 이런 양국이 화염에 휩싸이고 전쟁의 수렁에 빠지면서 전 세계 먹거리 조달에 경고등이 켜졌다. 포탄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각국의 밥상 물가가 치솟고 기아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임스 위더스 스코틀랜드 푸드앤드링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습을 감행한 직후 트위터에 “이건 분명히 글로벌 식량 안보와 식량 가격의 위기다. 인도주의적 위험이 더 오래, 더 넓게 지속될 것”이라고 올렸다. 알란 수더만 스톤엑스 수석 원자재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항구에 미사일 공격을 받은 선박이 여러 척 있었다”며 “100여 척의 배가 묶여 있는데 안전을 담보할 수 없어 출항하지 못하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1일 미국 식품전문지 푸드내비게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수출에서 우크라이나의 비중은 밀 12%, 옥수수 16%, 보리 18%에 달한다. 러시아까지 합하면 밀은 3분의 1, 옥수수는 19%, 해바라기씨유는 80%를 양국이 도맡아 각국에 공급하고 있다. 전쟁이 지속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곡물을 유럽 밖은 고사하고 유럽 각국에 운송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수더만은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비료의 중요한 원료”라면서 “곡물 수급은 물론이고 올봄 각국이 작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료 확보조차 빠듯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를 넘어 향후 수년간 글로벌 농산물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비료 수출국이기도 하다.
전 세계 밀 공급을 좌우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격하게 충돌하면서 불똥이 중동과 아프리카로 튈 참이다. 2020년 우크라이나 밀 수출의 95%는 이들 지역으로 향했다. 러시아 밀도 주로 아프리카로 수출된다. 2년 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참사로 밀 저장고가 파괴된 레바논도 같은 처지다. 미국 매체 복스는 2일 “이집트와 터키는 소비하는 밀의 70%를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국가들도 의존도가 높다”고 전했다.
전쟁으로 인한 수출 중단과 식량 공급 불안은 저개발국가의 가난과 기아를 부채질하는 위협요인이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을 주로 수입하는 국가 가운데 예멘 1,500만 명, 방글라데시 2,900만 명, 인도네시아 2,600만 명, 이집트 1,000만 명의 주민은 음식 섭취나 영양이 부족한 상태다. 나이지리아는 그 숫자가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보다 많은 5,500만 명이나 된다. 미국 환경싱크탱크 브레이크스루 인스티튜트의 알렉스 스미스 식품·농업 애널리스트는 “밀 가격 상승과 수입 차질은 이들 국가들에 특히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옥수수의 ‘큰손’이다. 매년 우크라이나 수출량의 30~60%를 수입해왔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고조되면서 중국 옥수수 가격은 최근 40%가량 급등했다. 중국에서 옥수수는 주로 돼지 사료로 쓰이는데, 중국은 전 세계 돼지의 절반을 소비한다.
따라서 수입 옥수수 가격 인상은 돼지를 거쳐 중국 물가 상승과 직결된다. 사회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쟁 개시 결정이 돌고 돌아 ‘가장 친한 친구’ 시진핑 주석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 구도다.
공교롭게도 시 주석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식량안보와 자급자족을 강조해왔다. 중국은 또 곡물 비축량을 사상 최대 규모로 늘렸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맹방 러시아가 전쟁을 준비하면서 중국에 귀띔해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당일 “수입 옥수수 가격이 크게 올라 대신 중국산으로 돌리거나 수수 등 대체재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0~2021년 우크라이나 보리 수출의 54%도 중국이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