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다시 일할 가능성은 0%라고 생각했어요.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직을 제의받고 1년 넘게 고민했죠. 상투적으로 들릴 것 같지만, 한국 (후배) 음악가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결정했죠."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 대표 음악제인 통영국제음악제(TIMF)가 이달 25일부터 열흘간 열린다. 독일에 거주 중인 진은숙 신임 예술감독은 음악제 개막을 앞두고 한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 음악제에 대해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갓 스무 살 성년이 된 음악제의 또 한 번의 성장을 위해 임기 5년간 일하겠다는 의욕도 넘쳤다. 그러면서도 예술감독직을 선뜻 수락하지 못했던 당시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앞서 상임작곡가와 공연기획자문을 역임하며 12년간 몸담았던 서울시향을 2018년 떠났던 경험이 그 망설임의 배경으로 짐작된다. 당시 안팎으로 정치적 분쟁에 시달렸던 서울시향에서 진은숙 감독도 곤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돌아온 이유에는 설립 전부터 통영국제음악제를 응원했던 오랜 애정이 컸다. 진 감독은 "맨땅에 삽질하며 통영국제음악당을 짓고, 20년간 음악제를 흔들림 없이 진행해 온 것이 너무 놀랍다"면서 "김승근 서울대 음대 교수(통영국제음악재단 초대 사무국장) 등 20년간 해오신 분들의 공로가 굉장히 크다"고 격찬했다. "다 만들어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느낌"이라는 겸손한 발언을 하면서도 그는예술감독으로서 음악제의 예술성을 한 차원 더 올리고 싶은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국제적 음악제가 되려면 질 좋은 프로그램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도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을 해내면서요. (통영국제음악제의 존재가) 한 인스티튜션(음악제 주최 재단)이 안정적으로, 정치적 흔들림 없이 계속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각시키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진 감독의 첫 작품인 올해 음악제의 주제는 '다양성 속의 비전'이다. 그는 "아시아, 미국, 유럽 이런 구분이나 남녀와 같은 경계도 모호해지는 요즘 한국도 더 눈을 바깥으로 돌려야 한다"며 "다양한 것을 소화하면서 우리의 것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여성 지휘자나 젊은 세대의 작곡가 등을 소개하는 데 공을 들였고, 음악 외에도 영화 등 영상 매체를 활용하기도 했다.
올해 개막 공연에서는 핀란드의 여성 지휘자 달리아 스타솁스카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앤드루 노먼의 관현악곡 '플레이: 레벨 1'이 아시아 초연된다. 직접 발명한 악기를 활용하여 독특한 음악을 남긴 20세기 작곡가 해리 파치의 음악을 선보이는 해리 파치 앙상블도 아시아에서 첫 공연을 한다. 이 외에 노르웨이의 거장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가 레지던스 아티스트(상주 음악가)로서 리사이틀을 열고,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등과도 협연한다.
진 감독은 지난해 가을부터 이미 작곡가 아카데미 운영도 시작했다. 세계적 작곡가로서 클래식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2004) 등 최고 권위의 상을 휩쓴 자신의 역량을 한국의 미래 세대에 전하고 싶은 열정이 감독직 수락의 또 다른 이유기도 했다. 그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연주회 기회를 주고, 해외에도 소개하고 통영국제음악제에 오는 앙상블 등과도 연결해주는 등 넓은 방면에서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이달 25일부터 4월 3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