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하버드케네디스쿨 초청 외교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후 미국 조야에서는 '안철수를 발견했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언론이 한국의 거대양당 대통령 후보 위주로 보도를 하다 보니, 안철수라는 인물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게 사실이다.
일찍이 1970년대부터 아시아를 방문하면서 한국의 차세대 정치인들을 만났고,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망명했을 때 그를 면담하기도 했던 한 미국의 원로인사는 안철수 후보 세미나를 보고 "그 안에서 리더의 모습을 봤다(I saw a leader in him)"고 평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 사회가 이런 인물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도 했다.
정작 어리둥절해진 것은 이번 세미나 준비 과정에 관여했던 필자였다. 안 후보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필자조차 그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에 (유력 양당후보 말고) 이런 후보도 있는데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본인으로부터 직접 들어 봅시다"라는 취지로 필자가 제안을 했고, 하버드대 측에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성사된 행사였다. 그런데 그 "들어나 봅시다"가 미국에서 뜻밖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게 미국 사회의 긍정적 요소가 아닐까 싶다. 늘 '신선한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열린 지적 호기심, 잠재적 인재들에 대해서도 적어도 한 번은 '발견'될 기회를 준다는 점 말이다. 워싱턴 싱크탱크 정책 회의를 하고 나면 종종 듣는 "다음에는 우리가 아직 만나보지 않은 한국의 신진학자들도 같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항상 새로운 인재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진다. 마치 일종의 사회정신처럼 말이다.
미국 측에서 안 후보를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보았던 이유가 또 있었던 듯하다. 원래 1시간 반을 계획했던 것을 한 시간으로 줄이면서 모두 발언 기회가 생략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침착하게 대응한 점, 또 사전 양해가 되어 있지 않은 즉석 질문들이 많이 나갔는데도 별로 막힘이 없었던 점 등이다. 미국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현재 하버드케네디스쿨에 소속된 한 인사는 "저건 외워서 하는 답변이 아니라 본인이 사안에 대해서 진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별생각 없이 봤는데, 미국 측 인사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면서 많은 것을 읽어내고 있었던 듯하다.
이번 세미나에서 미국 측이 던진 질문들은 전직 주한미국대사 등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준비된 것들이었다. 미국 조야가 궁금해하는 사항을 미국 인사가 직접 질문을 해서, 한국 정치인의 견해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던 것에도 의미를 두는 듯하다.
미국 측 반응에 신선한 자극을 받아서 필자는 이번 기회에 안 후보를 비롯해 언론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고 있는 다른 대선 후보 관련 기사와 인터뷰 등을 밀린 숙제를 하듯 찾아보게 되었다. 언론이 '소개'해주는 대로 차기 대통령은 당연히 주요 양당 후보 중 한 명을 뽑는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미리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고정관념 프레임을 뜻밖에도 이번에 미국인들이 깨준 셈이 되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 언론이 다시 한번 각 후보의 주요 정책 내용과 상호 차이점들을 차근차근 분별해주고 정리해줬으면 한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후보들의 공약들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