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타성에 관한 한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쿠키나 머핀 같은 상품을 제시한 뒤 구매 의사를 물어봤다. 상품의 가격은 비슷했고, 단 이 중 절반은 취약 계층을 돕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 또 절반은 일반 기업의 제품이었다. 실험은 연구진이 실시간으로 상품 구매를 지켜볼 것임을 알린 ‘관찰 집단’과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통제 집단’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결과는 어땠을까? 사회적 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정도는 관찰 집단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즉, 타인이 지켜볼 때 더 이타적이거나 도덕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때 우리는 더 이타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사회신경학자인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의 책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는 이처럼 인간이 친사회적 행동을 하는 심리적 동기가 타인의 호감이나 인정을 얻고자 하는 ‘보상 추구 동기’, 즉 '인정 욕구'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이타주의를 선택하는 것을 뇌의 작동 원리로 분석해 주목받았던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5년 만에 출간됐다. 개정증보판 출간을 기념해 한국일보와 가진 통화에서 김 교수는 "인정 욕구와 자기방어행동에 대한 연구와 뇌과학적 증거들이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책은 공감과 도덕성, 이타심처럼 인간의 고귀한 본성으로 여겨진 자질들이 실은 뇌의 특정 활동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여러 뇌과학적 증거를 통해 말한다. 이를 통해 인정 욕구, 갑질, 분노조절장애, 칭찬, 희생, 복수 등의 인간 행동을 분석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가 된 ‘공정성’ 역시 인정 욕구에서 비롯한 이타심을 통해 해석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타인에게 이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구는, 형평성을 위반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고자 하는 욕구와 같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김 교수는 “공정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실체가 있는 지점이 아닌 인정받고 존중 받고 싶은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가 부딪히며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공정이 완성된 상태라고 규정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공정은 나의 인정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정 욕구, 즉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을 돕는다는 전제는 ‘순수한’ 마음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과 공감, 이타성과 같은 소위 ‘인간의 고귀한 본성’이 결국 뇌의 작용이라는 주장을 담은 책을 내며 김 교수가 많은 사람들의 반발과 항의에 직면한 이유다.
그러나 김 교수는 “지나치게 이타성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사회는 오히려 약간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돕는 절대다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말의 이기심 없는 순수한 의협심을 강조하는 대신, 사회적 평판을 좇는 욕구의 기저 심리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최근 과학 출판계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의 선량함과 다정함이다. ‘다정함의 과학’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프렌즈’ ‘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 등 ‘이타적 인간’에 대한 분석이 늘었다. 이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인간의 친사회적 특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긍정적인 가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착은 또 다른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착하고 공정한 사람이고자 하는 갈망이 너무 커지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생길 수 있어요. 나에게 이기적인 선택이 가장 이타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는 인식 아래 감정을 균형상태로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지속가능한 이타심의 출발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