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기능 부전에 빠졌다. 정치 제도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한국 민주주의 미래도 없다.”
‘대한민국 지속가능 솔루션’ 정치분과 회의에 참석했던 현직 정치외교학과 교수들의 결론이다. 정치분과는 △정당개혁 △제왕적 대통령제 △선거제도 △의회정치 복원 등을 주제로 4차례 회의를 통해 한국 정치 시스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선 결선투표 도입, 청와대 정책실과 국회 법사위 폐지, 비례대표 확대 등의 다양한 정치개혁 방안을 제언했다.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해법으로는 청와대 권한의 실질적 축소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조진만 교수는 “미국 백악관은 보좌진이 400명밖에 안되는데 청와대는 1,000명 규모로 너무 비대하다”면서 청와대 구조조정을 제안했고, 장승진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때 정책실과 정책실장이 따로 만들어졌는데 업무 구분도 불확실한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포함한 권력구조 개헌은 부정적 의견이 강했다. 이재묵 교수는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현재 대통령 임기보다 3년 연장될 뿐”이라며 정당 중심의 책임정치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는 책임총리 제도나 이원집정부제 등 분권형 대통령제 또한 대통령제와 양립하기 힘든 구조라고 평가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치개혁 방향과는 결이 달랐다.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도 정치개혁의 주요 이슈였다. 장승진 교수는 “30~40%의 득표율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시스템에서는 국민통합이 불가능하다”며 다수 대표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대선 결선투표를 제안했다. 세계적으로 결선투표가 대세일 뿐 아니라 결선투표를 도입하면 연합정치의 토대도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공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박경미 교수는 “여론조사 경선은 정당활동을 심각히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선거 개선 방안도 쏟아졌다. 조진만 교수는 “사표 방지와 비례성 강화를 목표로 20대 총선에 도입한 준연동형비례대표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위성정당 설립을 엄격히 금지하는 정당법 개정도 시급한 과제로 지목됐다.
정당정치 정상화는 정치양극화를 해소하는 핵심 과제로 논의됐다. 박경미 교수는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불가능해지면서 법안처리가 지연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면서 “패스트트랙 등 국회선진화법의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법사위 폐지와 연합정치가 가능한 다당제 안착 등의 제도개선은 의회정치 선진화 방안으로 거론됐다.
국회와 대통령 관계 재정립도 주요한 정치개혁 과제였다. 이재묵 교수는 “정책협의에서 소외된 야당이 여당 대신 청와대를 찾아 시위를 벌이는 기현상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며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국회와 대통령의 대등한 관계 설정을 주문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위적 세대교체는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