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값

입력
2022.02.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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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그와 인연이 있는 정치인들이 줄줄이 문상간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 광경을 보며 부하직원 김지은씨에 대한 성폭력으로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사실상 끝났다 여겨졌던 안희정의 정치생명이 과연 끝났는지, 혼란을 느낀 기억이 있다.

피해 당사자인 김지은씨 역시 여기에 대하여 고통을 호소했다. 당시 화룡점정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적힌 문재인 대통령의 화환이 도착한 것이었다. 마음이 찜찜했는데, 그 감정의 정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주위 남자들은 동지로서 '의리'와 '친분'이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며 내게 핀잔을 주었고,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가 최근 김지은씨와 함께 근무했던 정연실씨의 증언을 보고 들으며 그 찜찜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정연실씨는 안희정의 영상 촬영을 담당했던 젊은 여성으로, 안희정 측에 섰던 증인들에 대항하여 김지은씨의 편에 섰던 증인이다. 최근에는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여 실명과 신상을 모두 공개하고 안희정 사건의 2차 가해자들을 폭로하는 등 여전히 피해자의 편에 서서 치열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법정에서 피해자 측에서 증언을 했으니, 할 일을 다 했다고 돌아서도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안희정에게 호의적 증언을 한 후 제법 높은 자리로 올라간 이들의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발언을 두려워 않는 그의 태도는 용기라는 두 글자 말고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그를 보면서 나는 2년 전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친분과 의리가 깊다 한들 현직 대통령이 범법자에게 화환을 보낸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

김지은씨는 대선후보 윤석열의 아내 김건희씨의 발언이 대서특필되며 다시 한번 세상에 끌려나와 입방아에 올라야 했다. '보수는 돈을 주니 미투가 없다', '미투는 삭막하다'. 그렇다면, 김건희씨에게 묻고 싶다. 만약 본인과 아주 가까운 누군가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얼마만큼의 금액을 받아야 그 '삭막한' 미투를 하지 않겠는가? 보수 측은 그럴 때 보통 어느 정도를 지불하는가? 과연 얼마가 '적정가'인가? 그리고 그 '적정가'는 누가 판단하는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혹은 보수 쪽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둠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관이 존재하여 이럴 경우 양쪽을 중재하고 적정가를 제시하여 삭막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조정하는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해 화가 난다면, 김건희씨는 자신을 미투를 할지도 모르는 사람, 즉 성폭력을 당할 수도 있는 여성의 쪽에 놓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 역시 그렇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크고 작은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그들 중 자신이 성폭력을 당할 줄 알았던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또한 성폭력의 80%는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지만 피해자들 중 그 '아는 사람'이 성폭력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라고 예측했던 사람 역시 보지 못했다. 소위 '정조'에 대해 미투가 없을 만큼 섭섭지 않은 적정한 가격을 매기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부디 김건희씨가 여성으로서 숙고해 보기를 부탁한다. 누가 우리에게 값을 매기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값을 매기는 이들을 누가 방관하고 있는가?


김현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