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은 알리기에리 단테(1265.3.1?~ 1321.9.14?)가 정적들에게 쫓겨 유랑하던 40대 초부터 숨지기 전까지 집필한 서사시다. 그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1300년 3월 25일부터 일주일간 저승을 둘러본 기록. 지옥-연옥-천국을 잇달아 돌며 그는 구약의 성인들부터 역대 주요 교황, 당대 정적들까지 색욕과 폭식, 탐욕, 반역 등의 죄를 저질러 심판받는 지옥의 죄수들과 기독교 세계가 성인으로 꼽는 신학자와 황제 등 천국의 거주자들을 잇달아 소개했다. 중세 기독교 세계관과 시대정신의 문학적 정수라 평가받는 '신곡'은 하지만 단테 개인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가치관의 진술이기도 했다.
그의 사적 자아가 가장 동요하는 제5곡은 지옥의 2원 '색욕 지옥'편이다. 거기서 그는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라벤나 군주의 딸로 유력자인 리미니 군주의 꼽추 아들과 강제 정략결혼했다가 자신의 진실한 연인인 시동생 파올로와 불륜을 맺어 살해당한 여성. 기독교 세계가 바른 사랑으로 치는 애덕(caritas)이 아니라 '더러운 욕정(concupiscentia)'에 몸을 던진 프란체스카는 하지만, 귀를 찢는 고통의 통곡 속에서도 참회를 거부하며 영원한 사랑을 지켰고, 서강대 철학과 김산춘 신부는 여인의 고백을 이렇게 옮겼다. "사랑은 이내 고귀한 마음에 불붙는 것/ 이 사람은 빼앗긴 내 아름다운 육체를/ 사랑했으니, 그것이 아직 나를 괴롭힙니다/ 사랑은 사랑받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사랑은 우리를 하나의 죽음으로 이끌었지요"
9세 무렵 동갑 여성 베아트리체(애칭 비체)에게 첫눈에 반해 마음으로 사모하다가, 9년 뒤 길을 걷다 각자 다른 이의 배우자로 스치듯 마주친 게 인연의 전부였던 시인의 사랑. 6년 뒤 비체는 숨졌고, 단테는 평생 신적 경외감으로 그리워했다. 그리고, 저 사랑의 서사시를 탈고하던 해 유배지 라벤나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