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77년이 흐른 지금까지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은 1만7,066명 중 후손을 찾지 못해 서훈이 전수되지 못한 유공자가 6,667명(39.1%)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독립유공자 10명 중 4명의 훈포장이 정부 서고에 유폐된 세월 동안,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서서히 잊히고 있다.
서훈 미전수는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유공자 가족의 행방을 찾기 어려워진 탓이 크지만, 후손 스스로 독립유공자 자손임을 증명하도록 하는 소극적 정부 행정의 책임도 적지 않다. 7년간 독립유공자 60명의 후손을 찾아낸 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한 서훈은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며 "늦기 전에 국가보훈처가 후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28일 보훈처 등에 따르면 훈포장이 전달되지 못한 독립유공자는 대통령장 5명, 독립장 173명, 애국장 2,665명, 애족장 2,104명, 건국포장 452명, 대통령표창 1,267명 등 6,667명이다. 여기엔 남만주 지역 무장투쟁단체를 통합한 정의부 총사령관으로 독립군을 지휘한 송암 오동진 선생(대한민국장)과 같은 거목도 포함돼 있다.
서훈 미전수 사유는 대상자 본적이 북한이거나 미상인 경우가 가장 많다. 분단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호적 등 관련 자료가 소실된 탓이다. 하지만 본적을 확인하고도 후손을 찾지 못하는 일 또한 적지 않다. 공적서에 적힌 인적 사항이 호적상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서훈을 받기 위해선 후손이 스스로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시스템도 원활한 전수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특히 해외동포는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2015년 기준 멕시코와 쿠바 지역엔 독립운동가 40여 명에게 훈포장이 추서됐지만 당시 유족이 실제로 서훈을 전달받은 사례는 쿠바의 임천택 선생(애국장)과 멕시코의 김익주(애족장)·황보영주(애족장) 선생뿐이었다.
안토니오 김 쿠바한인회 회장조차 당시 서훈을 받은 김세원 선생(건국포장)이 자신의 할아버지 '마누엘 김'과 같은 사람이란 걸 알 수가 없었다. 이듬해 대통령표창을 받은 이윤상 선생의 후손도 마찬가지였다. 옛 가족사진에 '리윤상'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었지만, 딸은 한글을 읽을 줄 모르니 속수무책이었다. 아버지 '안토니오 리'의 한글 이름을 알지 못했던 이승준 선생(2011년 건국포장 추서)의 아들도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임을 뒤늦게 알았다.
더디나마 독립운동가 후손 찾기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민간의 노력 덕분이다. 특히 한인 디아스포라(이산) 전문가 김재기 교수는 2016년 쿠바 독립유공자 13명의 명단을 들고 무작정 쿠바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쿠바·멕시코 현지를 샅샅이 뒤져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60명의 후손을 발굴했다.
이 중엔 아직 유공자로 추서되지 않은 분들도 있었다. 2020년 멕시코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5명을 새롭게 찾아냈던 게 대표적이다. 모두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인국민회 멕시코지방회에 몸담고 광복군 지원금, 광주학생독립운동 후원금 등 모금에 참여한 이들이다. 김 교수가 미주 지역 한인 단체들이 1909년 국민회 결성과 함께 창간한 신한민보 등의 사료까지 발굴해 일군 성과지만, 이들에 대한 서훈 추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중남미에서 이뤄진 독립운동은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소외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타국살이로 궁핍한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고국의 독립을 바랐던 이들의 헌신을 생각하면, 후손을 찾아 훈장을 전달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현재 유공자 후손은 보훈처의 공고를 보고 스스로 후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서훈을 전수받을 수 있다.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면 언어 장벽까지 더해진다. 김 교수는 "중남미 지역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으려면 보훈처 자료에 스페인어로 쓰인 현지 자료, 일제강점기 당시 신문 등 각종 사료까지 비교해가며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길게는 2년씩 걸린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당국이 독립운동가 후손 찾기에 관심을 갖고 '따뜻하고 적극적인' 보훈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나라에 헌신한 분을 찾아 예우를 다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며 "보훈처가 보다 적극적으로 후손 발굴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 교수는 "유공자 가족을 찾기 위해선 현지에 직접 가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며 "보훈처가 현지 전문가나 학자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