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대선 코앞에도 北 '도발 마이웨이'… "미국 계속 옥죈다"

입력
2022.02.28 00:10
1면
한 달 만에 미사일 발사, 올해 8번째
'북극성-2형' 검수 사격 가능성 거론

북한이 27일 한 달간의 ‘도발 휴지기’를 끝내고 또다시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남측 대선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요동치는 국제정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력시위를 재개한 것이다. 북한식 도발 시간표에 따라 대남ㆍ대미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회의를 소집해 “깊은 우려와 엄중한 유감”을 표했으나, 이번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 않았다.

5년 전 쏜 '북극성-2형' 검수사격?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전 7시 52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한 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한 지 28일 만으로 올 들어 8번째 군사행동이다.

탄도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300㎞, 고도는 620㎞로 탐지됐다. 군 당국은 사거리 1,000㎞ 이상의 준중거리미사일(MRBM)을 고각발사(높은 각도로 쏘는 방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분석 중이다. 정상각도라면 최대 비행거리는 2,000㎞에 달해 주일미군이 사정권이다. 북한이 2017년 2월과 5월 각각 발사한 ‘북극성-2형’과 비슷한 발사 패턴을 보인다는 점에서, 생산 배치된 미사일의 품질을 검증하는 검수사격 여지도 있다. 새 기종은 아니라는 뜻이다.

중러와 밀착해 '대미 압박' 가속

북한의 도발 재개는 예정된 수순이다. 무엇보다 미국을 옥죄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 관심이 온통 우크라이나 사태에 쏠린 미국에 ‘북한발(發) 도발 대응’이란 숙제까지 안긴 셈이다. ‘혈맹’ 중국의 올림픽 기간 미사일 시험발사를 멈췄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폐막 직후인 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낸 친서에서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군사적 위협을 짓부수자”고 말해 군사행동 재개를 일찌감치 예고했다.

이날 무력 행동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둔한 직후 나온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간 북한은 미사일 발사에 따른 미국의 제재를 ‘내정 간섭’으로 치부해온 터라 러시아의 침략 행태에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26일 외무성 연구사의 개인 명의 글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는 세계패권을 추구한 미국에 근본 원인이 있다”면서 러시아를 대놓고 두둔했다. 입장 정리가 끝난 만큼, 북중러의 결속을 발판 삼아 군사행동에 나서도 괜찮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내달 4일로 예정된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ㆍ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에 서둘러 탄도미사일을 쏜 점에서도 중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南 대선 앞두고 '존재감' 과시

남측의 대선을 코앞에 두고 존재감의 과시 목적도 엿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대선후보들의 ‘안보관’은 선거 막판 변수로 급부상한 상태다. 대북 대응 태세를 놓고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체제 정착”을 주장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힘에 의한 억지력 확보”를 제시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해법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라 북한 이슈를 한층 부각하려는 노림수로 볼 수 있다.

NSC가 이날 “중요한 정치 일정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우리 안보를 수호해 나가겠다”고 강조한 것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음을 경계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北 '마이웨이' 끝은?... 4월이 분수령

전문가들은 북한이 ‘마이웨이’를 통해 도발 일상화를 선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관건은 북한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겠다”고 언급한 모라토리엄 해제 시점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를 편드는 쪽으로 기조를 정한 만큼 군사행동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점을 감안해 미국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은 시기나 방법을 조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선 이후 진행될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연합훈련)과 김일성 생일(태양절)이 있는 4월 전후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