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 경주마 '마리아주'의 다섯해 슬픈 생애

입력
2022.02.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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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에 동원됐던 말이 강제로 고꾸라지는 영상이 동물단체에 의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말은 결국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고 ‘방송 촬영을 위해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에는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숨진 말은 퇴역 경주마(예명 '까미')일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최근 동물단체가 KBS를 통해 확인한 결과 실제로 밝혀졌다.

낙마 장면에 동원됐던 말은 마번 0041215의 '마리아주'. 말의 평균 수명은 25년 이상이지만 사망 당시 마리아주는 고작 다섯 살의 나이였다. 2019년 2,000만 원에 경주마로 팔린 뒤 2020년 12월, 지난해 2월과 8월 세 번 경주에 출전했지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가 벌어들인 상금은 0원이었다. 1년 6개월간 성적을 내지 못한 마리아주는 지난해 8월 경기도 말 대여업체에 증여됐고, 3개월 만인 11월 2일 드라마 촬영에 동원됐다 나흘 만에 숨졌다.

마리아주는 한 해 퇴역하는 경주마(경마에 사용되는 품종인 서러브레드 기준) 약 1,400마리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주는 경주마로 뛰는 동안 총 54번의 치료를 받았고, 식용 금지 약물인 '페닐부타존'도 여러 차례 투여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마사회 경마정보 심판위원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마지막 경기에선 폐출혈 증상을 보였지만 치료를 받는 대신 곧바로 경주마에서 퇴출됐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어차피 우승하지 못할 말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취재 도중 알게 된 한 마필관리사의 얘기와 일치했다. 그는 "다친 경주마가 완치 후 실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성심성의껏,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진료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진다 판단되면 바로 퇴역시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리아주에 대한 기록은 그나마 경주마로 활동했을 동안에 해당한다. 은퇴 이후에는 어디로 팔려가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수 없다. 원래대로라면 승용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하는 마리아주의 마지막 용도는 '용도 미정'. 경주마가 퇴역하면 관상용 번식용 승용 교육용 등으로 신고해야 하지만 마리아주 사례처럼 마주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퇴역 경주마의 복지가 사각지대에 놓인 사이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는 용도 미정의 비율은 갈수록 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마사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주마 가운데 퇴역 이후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는 '기타 용도' 비율은 2016년 5%(70마리)에서 2018년 7.1%(99마리), 2020년 22.5%(308마리)로 나타났다.

동물단체 제주비건동물자유연대는 매월 한 차례 제주 경마장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말 도축장인 제주축산농협 육가공 공장까지 걸어가는 '도축장 가는 길' 행사를 연다. 이들은 퇴역경주마 전 생애에 걸친 복지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2019년 제주도 내 경주마 산업 실태를 폭로했던 국제 동물보호단체 페타(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는 퇴역마의 실질적 대책 마련을 위해 한국마사회에 말들이 벌어들인 상금의 3%(약 50억 원)를 퇴역마 관리 프로그램 지원에 쓸 것을 제안했다.

마리아주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남은 퇴역 경주마를 위해선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죽고 나서야 주목을 받게 된 마리아주의 명복을 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