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11년 전 세상 떠났지만...꿈 잇는 초등 6학년 동생

입력
2022.02.28 18:00
칠성초 야구부 영구결번 11번의 비밀
김도윤 야구팀 입단 직후 불의의 사고
야구부 유니폼을 입혀주니 그제서야 눈 감아 
동생 도형이 올해 야구 시작



대구 칠성초등학교 야구부에는 영구 결번이 있다. 11번. 또한 야구부 합숙소 '웅비관' 복도에는 유니폼을 보듬은 액자가 걸려있다. 특정 팀이 영구 결번을 지정하거나 유니폼을 간직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축하'할 사안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칠성초등 야구부의 영구 결번과 유니폼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잠들어 있다. 12년째 결번인 11번의 주인공은 김도윤 선수이다. '김도윤'? 대구 야구계를 제법 안다는 사람들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야구 명문 칠성초는 배영수, 강동우, 안지만, 이동수, 우동균, 최준석 등 쟁쟁한 선수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김도윤이라는 이름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김도윤은 2010년 이맘때쯤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야구를 본격적으로 막 시작했던 시기였다. 너무나 짧은 야구 인생이었지만, 그의 재능과 열정은 물론 특별한 사연이 더해져 영구 결번을 결정한 것이었다. 도윤이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야구광 아버지 김찬영(51)씨로부터의 내림이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야구 인생

도윤이가 야구와 연을 맺은 것 역시 아버지의 권유였다, 인근 대구 북구 리틀 야구팀에 가입한 후 한달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속초 전국 리틀야구대회에 출전했다. 대회 8강전에서 상대팀의 3점차 리드 상황. 그럼에도 상대는 승부를 굳히기 위해 에이스 투수를 마무리로 등판시켰다. 당시 대구 북구 리틀 홍재호(48) 감독은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경기의 승패는 이미 갈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속초까지 왔음에도 일부 선수들이 벤치에만 앉아 있는 게 마음에 걸렸죠. 그라운드라도 밟고 내려가게 해야겠다고 판단, 후보들에게도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도윤이의 데뷔 타석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도윤이는 데뷔 첫 타석에서 3루타를 때렸다, 팀은 이 3루타로 분위기를 일신, 역전승했다. 얼떨결에 나간 경기에서 히어로가 된 것이다. 다음날 펼쳐진 4강전 경기에서 팀은 12대 1로 패했지만 도윤이는 5회 대타로 나와 솔로 홈런을 쳤다. 도윤이의 솔로 홈런으로 팀은 영패를 면했다. 당시 스카우트 목적으로 경기를 관람하던 칠성초 최한길(51) 감독은 도윤이의 타격 재능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초짜 가운데 초짜임에도 타격 능력만 놓고 본다면 대구에서 당장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선수였다. 최 감독의 권유로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아들의 마지막 소원

하지만 도윤이는 야구는 물론 삶조차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 2010년 설 전날이던 2월3일 비극이 일어났다. 그날 운동을 마치고 대구 3공단 노상 포장마차에서 아버지와 함께 간식을 먹고 있다 변을 당했다. 음주 운전자가 몰던 1.5톤 트럭이 왕복 8차선을 가로질러 차량 두 대를 밀치며 포장마차를 덮친 것이었다.

경북대 병원 응급실에서 가물가물해가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물었다. "지금 뭐가 제일 하고 싶으냐"고. 아들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 나 야구하고 싶어!"

아버지는 집으로 달려가 야구 유니폼을 가지고 와 아들에게 입혔다. "야구부 유니폼을 입혀주니 그제서야 편안히 눈을 감았다"며 당시 응급실에 함께 있었던 대구 본리초 김우상(46) 감독은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이 안 돼 도윤이가 아버지의 꿈속에 나타나 말했다.

'아빠! 나 다시 야구하러 아빠한테 갈 거야.'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몸이 좋지 않다고 하는 아내와 함께 간 산부인과에서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다. 2002년 둘째 딸을 가진 뒤 8년간 생기지 않던 아이가 들어섰다는 것이다. 도윤이를 떠나보내고 11개월 뒤 동생 도형이가 태어났다,

2011년 펼쳐진 강원도 속초 전국리틀야구대회는 2년연속 같은 곳에서 펼쳐졌다. 2010년에는 도윤이가 있었지만, 2011년 도윤이는 그곳에 없었다. 김찬영씨 아내의 배속에는 동생 도형이가 자라고 있었다. 김씨는 아내가 임신한 상황에서 함께 2011년 속초대회를 동행했다.

"비록 도윤이는 그라운드에 없지만, 팀원들의 간식과 부차적인 일들을 도왔다. 그리고 그곳에 간 가장 큰 이유는 배 안에서 자라고 있는 도형이에게 야구장의 함성과 타구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였죠."

3월이면 도형이는 형이 다녔던 칠성초 6학년이 된다. 김찬영(51)씨는 그때 꿈이 너무나 생생해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도윤이의 왼쪽 엉덩이에 있던 점이 도형이의 왼쪽 엉덩이에도 똑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언젠가는 도형이가 형이 못다 이룬 야구의 꿈을 함께 이루기 위해, 야구를 한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찾아간 대구칠성초등학교 야구부

김찬영씨는 도형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 칠성초 당시 야구부 최한길 감독을 다시 찾아갔다. 도형이가 8년 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야구를 시킬 테니, 꼭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지역 최강팀으로 손꼽히던 본리초 야구부에 가입을 시켜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는 관계자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씨는 확고했다. 형이 다니던 학교에서 형이 입었던 유니폼 등번호를 달고 그라운드를 뛰게 해서 지금은 영구결번이 된 11번이란 번호를 영구결번에서 해제시키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사도 가지 않았다. 김씨는 도형이가 3, 4살 되던 무렵부터 유모차에 태워 칠성초 야구부 훈련장을 찾곤 했다. 자연스럽게 야구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김씨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도형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야구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형이에게 야구를 권유해보았으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사연이 있다고 했다. 김씨가 원한다고 아이에게 억지로 시킬수는 없는 법. 그래서 유아기때부터 야구에 흥미와 애정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무진 애를 썼던 것이었다. 하는 수 없는 법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스스로 애써 마음을 다독거렸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리틀 야구팀에 들어간 뒤 4학년 때 정식 선수가 되는 현실로 미루어볼 때 도형이는 이제 야구와는 인연이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늘 나라로 간지 딱 만 12년만에 도윤이가 도형이의 가슴으로 날아든 것일까. 2022년 설을 하루 앞두고 도형이가 김찬영씨에게 너무나도 뜻밖의 말을 불쑥 해왔다. "아빠, 나 야구할래요." 도형이가 야구를 하리라는 기대를 접은지 오래였기에 찬영씨는 한동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도형이의 의지가 단단함을 확인하고 나서 하염없이 기쁜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1월27일 도형이는 칠성초 야구부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찬영씨는 설이 끝나는 주말 칠성초 야구 선수들을 위해 나름대로 성대한 불고기 파티를 열었다. 당연히 이날은 도형이의 뒤늦은 야구부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현 칠성초 야구부 이상호(37) 감독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멤버들도 모두 바뀌었지만 우리 팀은 단 한 순간도 도윤이를 잊은 적이 없다. 동생 도형이가 야구를 하겠다니 너무나 반갑다. 나를 포함한 칠성초등 야구부원들 모두가 환영하며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늘나라로 간지 딱 11년 만에 맞은 설에 도윤이가 동생과 아빠에게 잊을 수 없는 선물을 준 것이다.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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