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자리 선점 계속… 소녀상에서 더 밀려난 수요시위

입력
2022.02.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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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시위 장소 잃고 카페 앞에서 집회 진행
반대단체 선점 장소엔 트럭 한 대만 덩그러니

"저기로 밀려갔다가 여기로 또 왔습니다. 슬프지만 여기서 수요시위를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23일 1,532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린 서울 종로구 중학동 테라로사 카페 앞 단상에 오른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수요시위의 '메카'였던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소녀상 앞자리를 보수단체에 선점당한 뒤 집회 위치가 점차 소녀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을 짚은 것이었다. 수요시위 현장엔 근처 수요시위 반대 집회의 소음이 계속 들려왔는데, 때로는 참석자 발언이 안 들릴 만큼 소리가 컸다.

이날 수요시위는 지난주까지 집회 장소로 삼았던 서머셋팰리스 호텔 앞자리도 뺏기고 소녀상에서 더 밀려났다. 지난달 보수단체인 자유연대가 이날부터 서머셋팰리스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종로경찰서에 신고한 것이다. 서머셋팰리스는 소녀상과의 거리가 30m, 테라로사는 70m다. 정의기억연대, 평화나비 네트워크 등 수요시위 주관 단체들은 반대 단체가 소녀상 앞자리를 차지한 이래 연합뉴스 앞과 국세청 앞을 거쳐 서머셋팰리스 앞에서 시위를 진행해왔다.

수요시위 "장소 구애 없이 평소대로"

소녀상을 경유하는 평화로 일대엔 이날 수요시위 시작 전부터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보수단체 집회나 1인 시위가 이어졌다. 한 여성은 수요시위 현장 바로 맞은편에서 '정의기억연대 해체' '위안부 성노예설 거짓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도 했다.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평소처럼 집회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수요시위 정신은 이 자리에만 있지 않고 우리 사회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단체의 방해 집회를 비판하는 발언도 나왔다. 허수경 평화나비 전국대표는 성명서를 통해 "보수단체들이 큰 소음으로 수요시위를 방해하거나 참가자를 모욕하고 있다"며 "30년 동안 끊임없는 연대로 성장시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저지하고 그 역사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정의기억연대는 다음 주에도 테라로사 카페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지만, 그럴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반대 단체들이 경찰서 앞에서 불침번을 서가며 수요시위 장소를 자신들이 선점하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서머셋팰리스 앞을 선점한 자유연대의 시위는 열리지 않았다. 수요시위가 한창이던 시간엔 트럭 한 대와 피켓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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