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로 밀려갔다가 여기로 또 왔습니다. 슬프지만 여기서 수요시위를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23일 1,532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린 서울 종로구 중학동 테라로사 카페 앞 단상에 오른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수요시위의 '메카'였던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소녀상 앞자리를 보수단체에 선점당한 뒤 집회 위치가 점차 소녀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을 짚은 것이었다. 수요시위 현장엔 근처 수요시위 반대 집회의 소음이 계속 들려왔는데, 때로는 참석자 발언이 안 들릴 만큼 소리가 컸다.
이날 수요시위는 지난주까지 집회 장소로 삼았던 서머셋팰리스 호텔 앞자리도 뺏기고 소녀상에서 더 밀려났다. 지난달 보수단체인 자유연대가 이날부터 서머셋팰리스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종로경찰서에 신고한 것이다. 서머셋팰리스는 소녀상과의 거리가 30m, 테라로사는 70m다. 정의기억연대, 평화나비 네트워크 등 수요시위 주관 단체들은 반대 단체가 소녀상 앞자리를 차지한 이래 연합뉴스 앞과 국세청 앞을 거쳐 서머셋팰리스 앞에서 시위를 진행해왔다.
소녀상을 경유하는 평화로 일대엔 이날 수요시위 시작 전부터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보수단체 집회나 1인 시위가 이어졌다. 한 여성은 수요시위 현장 바로 맞은편에서 '정의기억연대 해체' '위안부 성노예설 거짓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도 했다.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평소처럼 집회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수요시위 정신은 이 자리에만 있지 않고 우리 사회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단체의 방해 집회를 비판하는 발언도 나왔다. 허수경 평화나비 전국대표는 성명서를 통해 "보수단체들이 큰 소음으로 수요시위를 방해하거나 참가자를 모욕하고 있다"며 "30년 동안 끊임없는 연대로 성장시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저지하고 그 역사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정의기억연대는 다음 주에도 테라로사 카페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지만, 그럴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반대 단체들이 경찰서 앞에서 불침번을 서가며 수요시위 장소를 자신들이 선점하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서머셋팰리스 앞을 선점한 자유연대의 시위는 열리지 않았다. 수요시위가 한창이던 시간엔 트럭 한 대와 피켓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