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 내 보험금 생판 모르는 남에게?... '톤틴연금' 재조명 받는 이유

입력
2022.02.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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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개발원, 톤틴연금 도입 검토
일찍 사망하면 손해, 오래 살면 더 받고
고령화 심화·1인 가구 확대로 수요 커져

먼저 숨진 연금보험 가입자가 미처 받지 못한 연금(보험금)을 다른 가입자에게 몰아주는 보험상품이 있습니다. 일찍 사망했다고 내가 낸 보험료를 가족도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받는다고 상상하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데요. 바로 '톤틴연금'입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은 지난 15일 올해 톤틴연금 등 새로운 유형의 연금상품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앞서 노후 안전판 중 하나인 연금보험 다변화를 추진하기로 한 데 이어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보험개발원이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한 셈입니다.

톤틴연금은 보험 가입자가 젊을 때 보험료를 내고 노후에 보험금을 연금처럼 수령하는 연금보험의 한 종류인데 기존 상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 연금보험 유형인 확정형, 종신형은 가입자가 연금을 받기 전에 숨지면 최소 죽기 전까지 낸 보험료를 가입자 가족 등에 돌려 줍니다. 또 연금 수령을 시작한 가입자가 숨질 경우엔 사전 계약한 기간만큼은 연금을 보장합니다.

이와 달리 톤틴연금은 보험 가입자가 숨지면 그 가족에게 돌아갈 연금은 없습니다. 대신 이 돈은 다른 생존 가입자를 위한 연금 재원으로 쌓입니다. 기존 연금보험 상품과 비교해 일찍 사망하면 손해지만 오래 살면 연금을 더 많이 받는 구조입니다.

17세기 이탈리아 금융가 로렌초 톤티가 설계한 톤틴연금은 망자의 몫을 산 자가 차지한다는 불편한 시선에 널리 퍼지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일본생명, 간포생명 등 일본 주요 생명보험사 5곳이 상품을 내놓으면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수명이 길수록 연금 수령액도 커진다는 면이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심한 일본 노년층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사망 후 재산을 남길 가족이 없는 노년층이 많은 일본의 가구 형태도 톤틴연금의 인기를 키웠습니다.

일본과 사회 구조가 매우 비슷한 우리나라에서 톤틴연금이 거론되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입니다. 고령화 심화, 1인 가구 확대 등에서 비롯된 톤틴연금을 향한 긍정적 분위기가 이 상품을 불편해하던 여론을 점점 앞지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일본도 가입자가 숨질 경우 가족에게 한 푼도 안 주는 대신 해약환급금만 보장하는 다소 약한 톤틴연금을 도입한 점은 새겨들을 법합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령화에 맞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연금상품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며 "연금보험 시장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가운데 톤틴연금 같은 상품을 출시하면 가입자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