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러시아 제재 동참, 여러 가능성 열어둬"… '압박 공조·러 의식' 이중과제

입력
2022.02.23 20:00
'제재' 언급 피한 전날 입장과 미묘한 차이
美 동맹국들 제재 동참에 '공조' 강조한 듯
"군사 지원, 파병은 안 해" 외교 보조에 초점
러시아 '안보 가치' 감안, '수출 규제' 등 거론

청와대가 23일 갈수록 격화하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를 놓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 정도의 입장에서 한 발 나아간 것이다. 물론 한반도 정세 핵심 당사국인 러시아와 전면 대결을 피하면서도 사태를 예단하지 않겠다는, ‘원론적’ 메시지로 읽힌다. 정부는 정치적 압박, 수출 규제 강화 등 다양한 카드를 염두에 두고 대응 수위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취재진에게 “한국도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의 제재에 관해 관련국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하지 않아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 제재 등은 외교채널로 협의하는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도 해 관련 논의가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청와대의 입장은 22일 문 대통령이 내놓은 메시지보다 ‘살짝’ 강도가 세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서방국들의 제재 준비를 거론하긴 했으나, 한국의 동참 가능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일본, 대만 등이 속속 제재 동참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한국 역시 압박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의 선택지에서 “군사적 지원이나 파병은 없다. 외교적 조치가 중심”이라고 못 박았다. 또 ‘미국으로부터 제재 요청을 받았느냐’는 질문엔 “미국이 고강도 수출통제, 금융제재 등 계획을 계속 밝혀왔고, 우방국들에 협의를 해오고 있다”면서 사실상 제안을 받았음을 내비쳤다.

정부 안팎에선 대러 제재에 동참할 경우 기존 수출 규제 품목 확대 등이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 방식은 러시아를 직접 겨냥하는 모양새를 피할 수 있다. 미국의 공조 요청에 응하면서도 러시아 측이 제재에 합류했다고 볼 여지가 적다는 얘기다. 정부는 러시아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10대 교역국이라는 경제적 목적 외에, 동북아 정세 안정이나 대북 공조를 위해서도 러시아의 협조는 필수다. 이 관계자 역시 “미국, 러시아 등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많은 도움을 준 나라들로 이들과 협력을 긴밀히 유지하는 것이 유엔 등 협의에서도 중요하다”며 러시아의 ‘안보적 가치’를 강조했다.

반대로 한러관계에 지나치게 치중해 제재에 미온적이라는 인상을 주면, 향후 한반도 문제 등에서 미국에 공조를 요청할 명분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국제법 준수’ 원칙은 확고히 하되, 국익 손실을 최소화하는 운용의 묘가 요청되는 셈이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은 “일본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제재에 동참했지만 이후 경제협력을 통해 가장 먼저 제재에 균열을 냈다”면서 “한쪽 편을 일방적으로 들기 보다 유연하고 솔직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정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