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핑크 보미의 앙상한 몸매가 포착되면서 다시 한번 '걸그룹 다이어트'에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아이돌들이 컴백을 앞두고 극한의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타이트한 무대 의상을 소화하고 화면발이 잘 받는 외모를 만들기 위함인데, 관리가 소홀해 보이는 멤버에겐 악플이 쏟아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아이돌 멤버들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음식을 멀리하고, 각종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다이어트를 포기하지 못한다. 반대로 일부 청소년들은 깡마른 스타들을 보며 자신의 몸을 저주하기도 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꿀벅지'라 불리며 건강 미인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유이는 어느 날 갑자기 마른 몸으로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배꼽티를 입은 뒤 '뱃살 논란'에 휘말렸고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받았다. 사람들의 시선에 몸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하루 한 끼만 먹었다는 게 유이의 고백이다. '1일 1식'은 무려 8년간이나 이어졌다.
라붐 멤버들은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활동 중 식단을 공개한 바 있다. 이들은 한 끼에 300칼로리의 채소 위주 도시락을 먹었고 그마저도 다 먹지 않고 남기는 모습으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디바의 노래 '왜 불러'를 "배불러 배불러"로 개사해 부르며 허기진 마음을 다 같이 달래기도 했다.
당시 솔빈은 "만약 신이 '살 안 찌는 체질로 태어날래? 얼굴 예쁘게 태어날래?' 하면 안 찌는 체질로 태어나고 싶다"면서 살에 대한 스트레스를 드러냈다. 해인은 "똑같은 몸무게라도 배가 부르면 살이 붙어있는 느낌이고 몸이 무겁고 바지가 안 맞을 거 같은 강박관념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에이핑크도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과거 회사의 감시 하에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던 일을 떠올렸다. 이들은 닭가슴살 한 캔을 나눠서 먹고, 풀밖에 없는 샐러드를 소스도 없이 먹었다. 팥빙수는 팥을 빼고 얼음과 과일만 먹었다. 미숫가루는 물과 미숫가루만 넣어야 하고 꿀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강한 자제는 오히려 음식에 대한 갈망을 불러왔다. 에이핑크 멤버들은 몰래 치킨을 시켜 화장실에 두고 멤버 한명씩 돌아가며 먹고 왔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칼로리바를 차 안에서 몰래 먹느라 창문 밖에 얼굴을 내놓은 채 먹다가 매니저에게 들키기도 했다고 한다.
오마이걸 승희는 뷰티 프로그램에서 하루 식단을 공개한 바 있는데 사과와 곤약젤리가 전부였다. 그는 "아침마다 사전 녹화를 하는데 의상이 붙고 조금만 먹으면 배가 튀어나오고 다 신경쓰인다. 게다가 자는 시간이 소중해서 먹고 바로 자도 불편하지 않은 음식으로만 먹었다"고 밝혔다. TV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충격 받아 다이어트 결심을 한 승희는 배 반쪽과 손바닥 크기의 닭가슴살 정도만 먹으며 혹독하게 살을 뺐다.
비단 걸그룹에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니다. 33 반 사이즈로 유명한 가수 아이유 역시 과거 식이장애를 경험했다. 그는 공허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고, 토할 정도로 먹어 병원치료도 받았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고백한 바 있다. 또한 사과 한 개, 고구마 2개, 단백질 보충제로 구성된 식단은 어릴 때 잠시 한 것이라며 "이거 절대 하면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거식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고 체중을 감량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망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심각한 정신 질환이다. 많은 스타들이 방송에서 거식증을 언급하면서 "살이 빠질 수만 있다면 나도 거식증에 걸리고 싶다"는 10대들까지 생겨났다. 마른 몸을 갖고 싶다는 병적 집착이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거식증 진료 인원은 2015년 1,590명에서 2019년 1,845명으로 지난 5년 사이 16% 증가했다. 환자가 가장 많은 성별·연령 집단은10대 여성(14.4%, 1,208명)이었다.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을 쓰고, 또래 집단과의 연대감도 일상 속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프로아나 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프로아나는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의미하는 '아나(anorexia)'를 합친 말이다. 이들은 체중조절에 집착하며 마른 몸을 가졌어도 체중과 체형에 집착한다. 음식을 아예 먹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맛을 본 뒤 그대로 뱉거나 식사한 뒤 구토를 하는 '먹토'도 흔하다.
지난해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식욕억제제의 부작용과 오남용 실태를 추적하면서 '프로아나'로 불리는 10대들을 취재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30~40kg대의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먹토' '초절식'을 감행하며, '뼈말라' 몸무게를 원하는 청소년들이었다. 자신의 키에서 125를 뺀 숫자가 바로 '뼈말라' 몸무게인데, 이는 실로 비정상적인 숫자다. 한 청소년은 다리가 얇아서 스타킹이 남는 사진을 취재진에 보여주며 자신도 그러한 상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인기 아이돌 멤버나 모델의 식단 사진을 올리며 이와 비슷한 자신의 식단을 SNS에 인증하기도 한다. 하루에 우유 한 팩과 사과 하나로 버티는 건 이들 사이에선 자연스럽다. 대중문화와 미디어, SNS 등을 통해 접하는 잘못된 문화가 이들의 의식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 다이어트는 탈모와 변비, 생리 불순이나 조기 폐경, 호르몬 이상 등의 건강 이상을 유발한다. 수많은 스타들이 다이어트 부작용을 토로해 왔지만 정작 결과에는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초절식' 다이어트는 일시적인 체중 감량을 불러올 뿐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열에 아홉은 요요가 온다.
무조건 마른 몸이 아름다운 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건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다. 대체 언제까지 걸그룹 멤버들은 살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나.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문제지만 전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는 꼭 변화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걸그룹을 제작했던 한 관계자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그냥 뒀더니 한없이 살이 찌더라. 문제는 통통한 걸그룹을 미디어가 기피한다는 데에 있다. '살부터 빼고 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며 "멤버들 스스로도 음악방송 등에 갔다가 자신과 달리 인형처럼 마른 걸그룹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다이어트 결심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저체중의 마른 걸그룹들이 표준이 됐기 때문에 조금만 살이 쪄도 '예쁘지 않다' '관리를 못한다'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게다가 예쁘고 화려해 보이면서 무대 위에서의 몸동작을 잘 보여주는 의상은 대부분 타이트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도 연예계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독하게 멤버들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