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라도 다시 한 번... 해발 4718m, 설산 품은 ‘하늘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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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6 10:00
<86> 티베트 ④ 시까쩨 따씨휜뽀와 얌드록초·남초 호수


8세기에 토번에 온 인도 고승 빠드마삼바바가 ‘설원의 중심은 라싸이고 다음은 녠마이(年麦)’라는 예언을 남겼다. 부처에 버금가는 고승의 혜안은 놀라웠다. 토번이 멸망한 후 영토가 분열됐다. 서부는 구게와 라다크 왕조가 지속됐고, 본토는 왕조의 교체가 빈번했다. 싸꺄와 파그루 왕조로 이어졌다. 14세기에 파그루 왕조는 황무지이던 녠마이에 궁전을 쌓았다. 17세기에 달라이라마 5세가 정권을 잡은 후 시까쩨(日喀则·gzhis ka rtse)라 불렀다.

라싸와 쌍벽을 이루는 판첸라마의 땅, 시까쩨

시까쩨는 라싸에서 270㎞ 떨어져 있다. 라싸하를 따라 남쪽으로 1시간, 다시 얄룽강을 따라 서쪽으로 3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고원에 적응하면 심장도 무감각해 평지를 달리는 느낌이다.

그래도 풍광은 낯설다. 안개와 운무를 구분하기 힘든 길이 계속 나타난다. 이층 집 하얀 담장도 줄지어 이어진다. 티베트 민족의 삶이 투영된 모습이다. 거리에는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지붕 위에는 룽따가 하늘거린다. 가랑비가 내렸던 날씨라 촉촉하다. 점점 물기는 사라지고 눈 쌓인 능선이 차곡차곡 따라온다.

시내에 도착해 호텔 베란다에 나갔다. 운이 좋았다. 파그루 왕조가 1360년에 건축한 쌍주쯔쭝(桑珠孜宗)이 시야에 펼쳐진다. ‘쭝’은 티베트어로 정부 기능을 지닌 성(城)이다. 전체는 백궁이며 중심에 조그맣게 홍궁이 보인다. 소포탈라궁이라 부른다. 파그루 왕조는 13곳에 궁성을 건축했다. 주로 산 중턱에 세워 방어가 쉬웠다. 당시 지은 궁성 중에 갼쩨쭝(江孜宗)이 있다. 시까쩨 동남쪽 100㎞ 지점에 위치하는데 슬픈 상처를 안고 있다.

1903년 겨울 영국군 대령 영허즈번드(중국명 榮赫鵬)가 군대를 이끌고 티베트를 침공했다. 네팔과 부탄 사이 진입로인 야둥(亞東)의 백성들은 결사 항전했다. 이듬해 3월 말이 되자 대령은 평화 담판을 빙자해 무방비 상태의 백성을 무차별 학살했다. 곧바로 라싸로 가는 길목인 갼쩨로 북진했다. 백성들은 고성에 올라가 3일 밤낮을 항거했다. 최후의 순간이 되자 절벽 아래로 모두 몸을 던졌다. 근대사의 ‘학살극’과 ‘보위전’은 항영(抗英) 유적지로 남아 있다.

영허즈번드는 영국으로 돌아가 기사 작위를 받았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를 ‘도살꾼’이라 부른다. 창문에서 바라본 설산이 유난히 서글퍼 보인다. 불과 100년 조금 지난 일이다. 만년이 지난다 해도 제국주의자의 백정 짓이 잊힐 리 있겠는가.

티베트 불교에는 크게 4대 종파가 있다. 가장 먼저 8세기에 생긴 닝마빠가 있다. ‘빠’는 종파라기보다 ‘사람들’ ‘신도’ ‘집단’이란 뜻이다. 11세기에는 쌰캬 왕조의 쌰캬빠와 파그루 왕조의 카규빠가 종파를 형성했다. 같은 시기의 까담빠를 14세기에 종교개혁가 쫑카빠가 겔룩빠로 발전시킨다. 여전히 이들 종파는 티베트 문화권 일대에 현존한다. 시까쩨에 겔룩빠 사원인 따씨휜뽀(扎什倫布·bkra-shis lhun-po)가 있다. 발음도 어렵거니와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상서로운 수미산’이란 뜻이니 확실히 불교 성지로 걸맞다.

사원의 유래에 대해 적은 안내문이 예쁘다. 파란색 바탕이 티베트의 하늘을 닮았다. 1447년 쫑카빠의 제자인 겐뒨둡빠가 처음 건축했다고 적혀 있다. 1578년에 쫑카빠의 3대 제자 쐬남갸초가 당시 실력자 몽골계 알탄칸(Altan Khan)과 회견했다. ‘바다처럼 위대한 스승’이라는 달라이라마 칭호를 얻었다. 달라이라마 3세라 하고 1, 2세를 추증했다. 겔룩빠가 종파 경쟁에서 우위를 장악했다.

세월이 흘러 전장(前藏)인 라싸와 후장(後藏)인 시까쩨로 분열돼 혼란이었다. 종파 분쟁이 재발했다. 달라이라마 4세가 사망하자 따씨휜뽀 교주가 라싸에 가서 달라이라마의 전세영동(轉世靈童)을 주재했다. 1641년 몽골계 구시칸(Güshi Khan)이 ‘위대한 학자’라는 뜻의 판첸(班禪) 봉호를 하사했다. 4세 판첸라마가 됐으며 역시 추증했다.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라싸와 시까쩨를 나눠 통치했다.


사원은 면적이 15만㎡에 이르며 3,600칸 규모다. 민가와 승방도 많다. 골목이 좁은 편이다. 크고 작은 전각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다. 끝자락에 판첸라마 10세의 영탑을 위한 전각이 나온다. 입 벌린 사자 위쪽에 간판이 걸렸다. 티베트어, 중국어(간자체), 알파벳이 나란하다.

끝에 흥미로운 말이 있다. 티베트 발음으로 씨쑴남갤(釋頌南捷·sisum namgyal)이다. ‘삼계에 대한 존엄’이라는 뜻이다. 사리탑과 어울리는 작명이다. 천당, 인간세상, 지하세계를 모두 주관하는 성자가 머무르는 공간이다. 1989년에 열반한 판첸라마를 위해 지었다.

입구는 꽤 좁다. 관광객이 많아 다닥다닥 붙어 들어선다. 그 와중에도 벽에 걸린 탕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슴 한 쌍이 있으니 부처의 녹야원 설법 장면이다. 수염이 길게 자란 부처를 그렸는데 흔하게 보기 힘들다.

옆에 홍색, 남색, 녹색 얼굴을 드러낸 보살이 있다. 도모(度母) 보살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에서 타라(Tara)라 한다.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티베트에서는 쏭짼감뽀의 눈물이 만든 보살이라는 우화가 있다. 문성공주와 티쭌공주가 녹도모와 백도모다. 티베트 사원에 가면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자주 등장한다.

전각 앞마당이 숨 돌릴 정도는 된다. 쾌청한 날씨라 다행이다. 좁은 공간에 비해 심리적으로 평온하다. 금과 은으로 도배한 11.55m의 영탑이 있다. 아래쪽은 네모 반듯하고 위쪽은 배광(背光)을 드리운 듯 원형이다. 운석을 비롯해 수천 개의 보석으로 치장했다. 벽에는 금으로 쓴 불경이 꼽혀 있다. 사리를 보관한 탑이라 향불과 연기,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니 눈과 코가 얼얼하다. 어둠을 벗어나니 새파란 하늘이 더욱 짜릿하다. 은은한 색감의 담장이 조금 전보다 훨씬 색다르게 젖은 느낌이다.

승려와 관광객이 섞여 사원 앞은 복잡하다. 판첸라마는 이인자로서 달라이라마의 전세영동을 결정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도 책임졌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였다. 판첸라마도 전세영동으로 후계를 승계한다.

달라이라마 14세는 인도에 있다. 현재 판첸라마 11세는 중국 정부의 국무원 비준을 받았다.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등의 직함을 지닌 판첸라마에 대해 일반 백성은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도 비슷하긴 했다. 후계에 대한 최종 결정은 늘 간섭을 받았다. 문화혁명을 거치며 티베트도 라싸도 시까쩨도 무사하지 않았다. 사원이 풍비박산 났다. 빠드마삼바바의 예언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티베트의 성스러운 호수, 얌드록초와 남초


라싸로 돌아가는 길이다. 80㎞ 떨어진 다주카(達竹卡)에서 휴식이다. 티베트는 과속 방지를 위해 주행 시간을 체크를 한다. 구간을 정해 지정된 시간보다 빨리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신나게 달린 차량은 모두 쉬었다가 간다. 간이 화장실도 있어 자연스레 노천시장이 열린다. 유사 골동품이나 민속 공예품을 판매한다. 전국 어디서나 파는 물건도 꽤 있다. 얄룽강 상류의 도랑이 흐르고 사방 어디를 봐도 설산이다. 고원 마을의 한적한 분위기에 젖는다.


니무(尼木)를 지난다. 취수이(曲水) 부근에서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간다. 해발 5,000m 넘는 산을 꼬불꼬불 넘어간다. 고개를 넘으면 느닷없이 에메랄드 물빛이 펼쳐진다. 멀리서 보면 마치 정지된 강물 같다. 티베트의 3대 성스러운 호수 중 하나인 얌드록초(羊卓雍措·Yamdrok Tso)다. ‘높은 곳에 위치한 벽옥(碧玉)’이란 뜻이다. ‘초’는 호수다.

관망대에 티베트 토종개 짱아오(藏獒)가 목도리를 두른 듯 붉은 털을 자랑하고 있다. 비싼 개로 유명하다. 옆자리에 서서 기념사진을 남겨도 좋다. 인증으로 손색없는데 공짜는 아니다. 야크를 타고 찍을 수도 있다. 그냥 호수만 찍혀도 훌륭한 인증 사진이다.


호수로 내려간다. 물은 유리처럼 맑다. 해발 4,441m에 위치하며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짧다. 호수 둘레가 250㎞에 이르며 면적은 678㎢다. 융기로 형성돼 염수를 담고 있다. 얄룽강으로 흐르다 어느 순간 퇴적으로 막혀버린 언색호다. 만년설 빙하가 녹아 호수로 유입돼 짠맛이 줄었다. 바닷가에 자라는 함초가 초원을 이루고 있다. 양떼가 한가롭게 붉은 풀을 뜯고 있다. 초원의 별난 풍광이 얌드록초에 있을 줄 미처 몰랐다.


또 다른 3대 성호인 남초(納木錯·Nam Tso)로 간다. 라싸 북쪽으로 2시간을 달리면 양바징(羊八井)이다. 넨칭탕구라(念青唐古拉)를 관망할 수 있는 곳에 정차한다. 주봉이 해발 7,162m인 산맥이다. 동서로 1,400㎞에 이른다. 타르초가 휘날리고 야크가 관광객에게 손짓한다. 설산이 만든 도랑과 초원을 떠도는 양떼를 보며 달리면 담슝(當雄)에 도착한다. 천혜의 자연경관 남초를 보호하려고 매표소를 멀리도 두고 있다. 톨게이트처럼 문을 하나만 열어서 차들이 정체다. 1시간을 더 들어가야 한다.


곧바로 설원이 등장한다. 언덕길이 계속 이어진다. 해발 5,190m의 고개를 넘는다. 온 사방이 눈 덮인 산이다. 30분 정도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넘는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잠시 멈춘다. 차도 사람도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바깥에 나가니 생각보다 춥지 않다.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습기도 많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겨울 분위기를 풍기는 가을이다. 눈을 뭉쳐 던지며 잠시 장난을 친다. 아래로 내려간다. 순식간에 눈이 사라졌다. 평지를 조금 달려가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가 환영 인사를 한다.


해발 4,718m다. 동서로 70㎞, 남북으로 30㎞가 넘는다. 남초는 천호(天湖)라는 뜻이다. 하늘과 가까운 호수라는 말인데, 볼수록 ‘하늘호수’ 그 자체다. 수평선 바로 위로 설산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무언가 달라 보이는 설산의 색감이 구름으로 이어지고 다시 호수로 반영되니 그저 순백의 세상이다.

바다 같은 호수다. 파도는 없고 소금 맛만 살짝 남았다. 이다지도 높은 곳에 염분 호수라니. 얼마만큼이나 치솟았는지 궁금할 정도다. 수십 마리의 야크가 돈벌이를 하고 있다. 돈을 받은 야크는 몇 발자국 물러나 호수에 발목을 적신다. 뒷걸음치고 다시 앞으로, 손님을 내려주는 야크는 참 순하다.

땅이 살짝 높아 안쪽으로 물이 쏙 들어왔다. 자연스레 호수 위에 길이 만들어졌다. 비가 많이 내리면 합체하겠지만 덕분에 사람들과 그 반영이 예쁘다. 설산 봉우리로 구름이 스치듯 지나고 살포시 드러난 하늘과 그 위로 또 다른 구름 층이 미동조차 않고 정지해 있다. 남초와 어울리는 백마도 있다. 한번 올라타고 최고의 ‘인생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오른쪽 왼쪽 어디를 봐도 절경 그 자체다. 4시간 가까이 달려왔으나 머문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처음부터 호흡이 거칠었다. 라싸보다 1,000m 높은 고지대다. 티베트에서 5일이나 지냈건만 심장은 토박이가 되기 어렵다. 슬로비디오로 걸어 차량까지 간다.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남초를 떠난다. 다시 오면 하루 숙박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천천히, 욕심을 비웠다.


라싸로 돌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역으로 이동한다. 칭짱(青藏) 열차를 타고 티베트를 떠난다. 발걸음이 무겁다. 오전에 라싸를 출발해 22시간을 달려 다음날 아침 시닝에 도착하는 기차 여행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을 달리는 기차다. 해발 3,650m 라싸를 출발한 기차는 4,500m의 나취(那曲), 4,700m의 안둬(安多)를 지난다. 시속 100㎞로 달린다. 차창 밖으로 선명하게 나타나는 설산과 초원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해가 있을 때 부지런히 봐야 한다. 오른쪽과 왼쪽, 그 풍광도 때때로 다르다. 3번이나 탔는데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흥분된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올 때면 티베트 자치구를 벗어나게 된다. 칭하이성으로 진입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 탕구라(唐古拉)를 지난다. 5,068m다. 야금야금 올라온 기차 덕분에 숨결은 고른 편이다.

노을이 유난히 붉은 밤이 시작된다. 어둠과 함께 사라질 노을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붙잡고 있다. 티베트에서의 며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하늘과 구름, 이를 다 품은 호수까지 가슴 깊은 언저리에 꼭꼭 챙긴다. 침대에 누우면 덜컹거리는 율동에 금방 녹는다. 티베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나 꿈에라도 다시 만나면 좋겠다.

“짜이지엔! 티베트”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