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 창극으로 만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정수 리어왕

입력
2022.02.23 17:13
21면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 3월 17일 개막
노자 '물의 철학' 엮어 각색…무대에도 20톤 물
리어 역에 젊은 소리꾼 김준수 반전 캐스팅도

셰익스피어 비극의 정수인 '리어왕'이 이번엔 우리 소리로 재탄생한다. 판소리는 물론 소설과 서양희곡 등 다양한 소재로 창극의 외연을 확장해 온 국립창극단이 다음 달 선보이는 신작 '리어'를 통해서다. 원작을 관통하는 주제를 노자 사상과 엮어 풀어낸 극본에 판소리를 접목한, 도전적인 작품이다. 늙은 왕인 리어 역에 젊은 소리꾼 김준수(31)를 낙점한 캐스팅도 파격적이다. 작년 말 같은 원작의 연극 작품들이 받은 호평 사례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창극 '리어'는 음악은 물론이고, 극본부터 우리 언어와 문화가 짙게 뱄다. 2016년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과 서양희곡 '트로이의 여인들'을 창극화해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배삼식 작가가 각색했다. 그는 23일 신작 '리어' 기자간담회에서 "원작 '리어왕'은 인과응보, 권선징악처럼 흔히 이 세계가 그러해야 한다는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극이 흘러간다"며 "그 점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어질지 않다'는 노자 사상을 닮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단순한 선악 대립구도가 아니라 종국에는 소멸하는 인간 개개인이 살아 있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 존재인지를 부각했다. 원작과 달리 제목에서 '왕'을 뗀 것도 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려는 취지다.

물의 철학이라 불리는 노자의 사상을 고려해 무대에도 물의 이미지를 담았다. 폭 14m, 깊이 9.6m 크기에 달하는 무대 세트에 20톤의 물을 채우고, 배우들은 방수 신발을 신고 물 위를 다니면서 연기한다. 무대디자인을 맡은 이태섭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니 자연의 물성과 다르지 않다는 게 핵심"이라며 "(무대 위에) 잔잔한 물이 흔들리고 반사되고 왜곡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30)이 각각 리어와 글로스터 역을 맡는 등 총 15명의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특히 리어왕은 노배우의 역이라는 통상적 관념을 깼다. 지난해 하반기 성공을 거둔 연극 '리어왕'와 '더 드레서'에서 리어왕 역은 각각 이순재(87), 송승환(65)이 맡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정영두 연출은 "주변의 우려를 알고 있다"면서도 "소리의 결이나 작품 캐릭터의 이미지 등을 보고 내린 결정으로, (스스로) 가졌던 한두 가지 의문도 연습 과정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관객이 배우의 나이를 잊고 인물 너머의 심리에 몰입할 수 있게 끌고 갈 배우의 역량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국악 크로스오버 경연 방송으로 이름을 알린 김준수는 "방송 출연 이후 첫 작품이라 부담도 있지만, (방송으로 인해) '창극을 보고 싶다'고 하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듦'보다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며 분노와 회한, 원망과 자책으로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한 인간을 표현해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음악은 창극 '귀토' 등의 한승석이 창작을,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을 맡았다. 한승석 음악감독은 "모든 노래는 판소리로 전통 음악 어법으로 짰고, 반주 음악은 정재일씨가 디자인해 전체적으로 보면 국악과 양악의 컬래버"라고 설명했다. 또 "증오, 광기, 파멸 등 전통 판소리와 다른 색깔의 감정들이 표현된 텍스트가 기반이라 창작이 쉽지 않았지만 오음계를 사용하돼 운용 방식을 달리하며 풀어 갔다"고 덧붙였다. 공연은 국립극장에서 3월 17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


진달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