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후보 TV토론이 청각장애인의 참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방송사 중계 과정에서 수어통역사가 한 명밖에 배치되지 않아 후보들의 대화를 원활하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수어 통역사 박미애씨는 22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기관과 방송사가 국민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한국수어의 날'인 3일 중계된 지상파 3사 초청 TV토론회를 예로 들었다. "한 청각장애인 칼럼니스트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징검다리 게임을 보는 것 같다고 관전평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는 "수어 통역사가 한 명이기 때문에 소리를 끄고 보면 어느 분이 얘기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줌 아웃을 해서 네 명이 한꺼번에 있으면 도대체 누구 말을 통역하는지 판가름하느라 내용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장애인 인권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차별진정을 제기, 인권위가 2018년 5월 '선거방송 화면송출 시 2인 이상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선거방송토론은 물론 20대 대선인 지금까지도 달라진 점은 없다.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미디어 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TV토론회에는 단 한 명의 수어통역사만 등장했다.
박씨는 "지난 총선 때 '후보자 얼굴과 통역사 얼굴이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안 된다'라는 (선거관리위원회) 답변을 들었다"면서 "투표는 모든 국민이 갖고 있는 기본권인데, 기본권보다 비장애인들 시청권을 우선으로 두는 이런 발언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역 방송에서는 후보자별로 통역사를 붙이며 지역 토론회에서는 진행한 적 있다"고 소개하며 "기술적으로 안 되는 게 아니다. 어제 대선토론 있을 때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부단장이 자비로 본인 유튜브에서 수어 통역만 송출하는 화면을 시범적으로 해봤다. 개인 유튜브에서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최근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의 AI수어통역사 비하 논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12일 SNL 코리아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서는 베이징올림픽 편파 판정 논란을 전하는 기자와 AI통역사가 등장, 엉터리 수어를 개그 소재로 삼아 논란이 일었다.
박씨는 "세종시 브리핑에 수어통역사들이 배치되기까지 10년 이상 정부에 요청해 그 자리에 겨우 설 수 있었다. 그 노력을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표현을 한 것"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일했었는데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그 모습을 보고 제 일에 대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께서 저희와 함께 항의해주시면 앞으로 정부기관이나 방송사가 많이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많이 지지해달라"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