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대선후보 TV토론 도중 "한국이 곧 기축통화국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고 밝힌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뜨겁다. 이 후보의 발언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장을 인용한 것인데, 국민의힘 쪽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조롱을 가한 반면 민주당 쪽에서는 부채비율에 관한 토론이 본질이라고 반박했다.
이 후보는 이날 토론 도중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기구는 (GDP 대비 국채 비율이) 85%까지 적절하다고 한다. 지금은 매우 낮아서 충분히 여력이 있다”면서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안 된다는 반박이 있는데 우리는 이미 경제대국이고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이를 두고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의 차이는 알고 있느냐"면서 우려를 표하자 이 후보는 "곧 기축통화국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할 정도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매우 튼튼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이에 대해 "기축통화국은 해외 국채 수요가 많아 국채를 (제약 없이) 발행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비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인용한 '기축통화국 가능성' 보도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4일 언론을 대상으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토대로 나왔다. 전경련은 보도자료를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근거 제시"라는 제목으로 배포했고, 대부분의 언론 보도도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 실제 내용은 IMF의 특별인출권(SDR) 준비 통화에 원화가 포함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논의되는 기축통화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축통화(key currency)란 어느 나라에서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 국제적으로 수요가 꾸준하고 국가 간 무역 및 금융 거래에서 자주 이용되는 화폐를 말한다. 국가의 경제 규모나 시장의 안정성 외에도 관습적 평가 등 주관적 요소가 작용하므로 SDR 통화바스켓 편입과 같은 제도적 요소로만 가늠할 수는 없다.
전경련의 보도자료에선 위안화를 기축통화 중 하나로 인정했지만, 일반적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위안화가 달러와 같은 위상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한국이 IMF 등 국제기구에서 선진 경제(advanced economy)로 분류되고, 중국의 경제 규모가 여타 국가를 압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은 신흥국 시장(emerging market)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전경련이 제시한 근거를 보면 이 후보의 주장처럼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하다"의 근거로 쓸 수 있다. 전경련은 ①한국경제의 위상이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교역액 세계 9위, 국가신용등급 AA 등으로 높아졌고 ②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③SDR 편입의 첫 요건인 '글로벌 수출 5위 이내'를 충족했다고 밝혔다.
또 ④2020년 한국의 수출입 원화결제 비중이 4.9%로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는 등 원화의 국제화가 상당 부분 진전했으며 ⑤정부도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기축통화국 가능성' 발언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며 비꼬는 투로 비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기축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비꼬았다.
이 대표는 다른 글에서는 "한국노총이 이재명 후보 지지한다고 선언했던데 한국노총의 지지를 받고 전경련의 생각으로 경제의 큰 틀을 짜는 멋진 후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같은 당의 원희룡 정책본부장도 "이재명 후보님,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이 된다고요? 최배근 교수가 그러던가요? 아니면 김어준씨?"라고 비아냥 섞인 어조로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측에서는 적정 국가부채 비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라고 반박했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지난 5년 동안 굉장히 많이 커진 건 사실"이라면서 "채무 문제, 국가부채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기축통화까지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탄희 의원도 "이준석 식 비아냥 정치를 끝내달라"며 "향후 5년간 국가부채·가계부채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아무 대안도 없이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