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힌 세계관인데?"
2010년 즈음 유럽 출장 중에 집어 든 옷의 상표를 보고 내뱉었던 찬사였다. 상표명은 '칼, 마크, 존'이었다. 기가 막히다고 한 것은 그 상표명은 패션업계 사람이라면 20세기부터 21세기를 관통하는 최고의 디자이너라 불리는 칼 라거펠트, 마크 제이콥스, 존 갈리아노의 이름이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창작자의 안목, 즉 세상을 바라보며 관점이나 취향으로 분별하여 창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정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요즘은 강산이 3년에 한 번씩 변한다는데 그렇다면 MZ세대의 '칼, 마크, 존'과 같은 세계관이 빛나는 디자이너를 꼽자면 누가 있을까? 건강즙처럼 지금의 MZ세대가 매혹된 세계관 중 그 엑기스만 뽑아 응축한 듯한 3인 3색의 디자이너들이 있다. 마린, 조나단, 시몽을 눈여겨보자.
1991년생 마린 세르의 'Marine Serre'는 블랙핑크의 제니부터 팝스타 비욘세까지 입는 반달 모티브가 눈에 띄는 브랜드이다. 마린 세르는 2017년 LVMH 프라이즈를 타면서 미래적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데뷔 컬렉션부터 마스크를 늘 선보인 거로 잘 알려져 있다. 자전거를 타며 도심 공기가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고객들이 자전거를 탈 때면 마스크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구환경을 생각하며 지금은 전체 컬렉션의 업사이클링 소재 사용 비율이 50%나 된다. 튀는 미래적 디자인과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은 다른 듯 보여도 '미래'라는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다.
84년생 조나단 앤더슨의 'JW Anderson'은 며칠 전 #runhany라는 태그를 달고 '달려라 하니' 이미지의 가방 3점을 인스타그램에 선보였다. JW 앤더슨은 유니클로, 몽클레르 등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며 그 자신은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그런데 왜 하니였을까?
그는 캐릭터와 맥락 덕후일지도 모른다. 그는 유니클로 때는 동화 캐릭터 '피터 래빗', 몽클레르 때는 루니툰 만화의 고양이 '실베스터', 로에베에선 지브리의 '이웃집 토토로'가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제품을 선보였다.
JW 앤더슨의 첫 해외 매장이 열린 곳은 한국이다. 달려라 하니는 한국의 첫 시리즈형 국산 애니메이션이었다. 세계관의 맥락이란 이런 게 아닐까?
90년생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Jacquemus'의 데뷔는 한국 일일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았다. 고졸에 농촌 출신인 그는 부푼 꿈을 안고 파리에 상경해 패션 스쿨에 진학하지만 한 달 만에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다.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열아홉 살에 브랜드를 시작한다. 그는 파리지앵이나 여배우를 브랜드 뮤즈로 삼지 않았다. 그의 뮤즈는 시금치와 당근을 키우던 바로 자신의 농부 어머니였다.
소셜미디어를 한다면 그를 몰라도 아마 코딱지만 한 작은 가방과 라벤더밭에서 하는 패션쇼 이미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몽은 그렇게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비주얼로 눈동자를 마비시키는 자크뮈스가 되었다. 요즘 인기인 '나다움'이란 세계관의 최강자는 그가 아닐까?
독특한 세계관으로 유명한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주인공은 "사람들은 3개를 찾으면 그만 찾지"라는 대사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숨겨둔 4번째 도청기로 범인을 잡는다. 이 컬렉션에 추가할 또 다른 세계관 강자는 각자의 소셜미디어에서 찾아보자. 그러다 보면 '칼, 마크, 존'의 시대와 '마린, 조나단, 시몽'의 시간을 나의 순간으로 가져올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