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주(67)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헬리콥터 개발사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특히 제트엔진, 헬리콥터에서 나오는 소음, 음파 등을 연구하는 공력음향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최근 '카이스트 명상 수업(위즈덤하우스 발행)'이란 책을 냈다. 헬리콥터 박사가 명상 책이라니, 연유가 궁금했다.
지난 18일 전화로 만난 이 교수는 "마음이 건강하면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하게, 각자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다"며 "누구나 명상을 통해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고 책을 쓴 계기를 설명했다. 그가 2011년, 2012년, 2018년 카이스트에서 진행했던 명상 수업이 책의 바탕이 됐다. 2011년 카이스트 학생들이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을 당시, 학교가 학생들의 마음 건강을 위한 대책으로 마련한 게 그의 명상 수업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마음 빼기' 명상을 가르쳤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성찰), 이를 하나씩 비워내는 과정이다. 그는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사진으로 자기 안에 쌓여 있는데, 이게 수시로 떠오르면서 잡념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며 "마음속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도 없애는 게 마음 빼기 명상"이라고 말했다.
나쁜 기억은 그렇다치고 좋은 기억은 오래 간직하면 안 될까. 그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과거의 좋았던 나 자신과도 비교하게 된다"며 "아주 좋은 추억도 현재의 삶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업 시간에 이야기해보면 가족, 은사에게 들었던 칭찬이나 상을 받았던 일이 나중에 부담이 됐다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트레스가 된 거죠.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버릴 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게 됩니다."
경쟁의식, 열등감, 부담감에 허덕이던 학생들에게 명상은 효과적이었다. 그는 "한 학생이 명상 수업을 듣고 '방황하지 않게 됐다'고 했던 게 인상 깊었다"며 "생각을 버리면 고정관념과 편견이 사라지고 집중력과 창의력이 발휘된다"고 강조했다. 그 역시 어렸을 때 콘크리트로 된 개집에 갇혔던 기억을 마음에서 빼냈더니, 한동안 그를 괴롭혔던 폐소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명상과 그의 인연은 20년 전 시작됐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가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면서 인생은 바닥을 쳤다.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회사 뒷수습을 하느라 10년간 단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책에서 명상을 접하고 떠나게 된 '명상 휴가'로 인생이 달라졌다. "보통 자기 자신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잘 모르거든요. 명상으로 '내 안에 이런 마음이 있구나'를 돌아보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착각, 오해, 불화가 인생에서 많이 줄었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 8만 명의 사람들이 그가 2018년,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Coursera)에 등록한 명상 강의를 들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정신 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강생 수가 부쩍 늘었다. 그는 "자기 내면이 변하지 않으면 코로나가 끝나도 여전히 힘들 수밖에 없다"며 "독자들이 명상을 통해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에서 변하지 않는 행복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