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빙판 논란의 출발점...얼음이 미끄러운 이유

입력
2022.0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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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으로 재조명된 빙판의 중요성
종목마다 얼음 표면온도, 두께도 제각각
얼음 미끄러운 이유 과학적 규명은 현재 진행형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20일 막을 내렸다. 한국 선수단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중국의 텃세 판정 논란 속에서도 금메달 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로 종합 14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선수들이 극복한 것은 대외 환경만이 아니었다. 빙상 종목은 말 그대로 '얼음'과도 싸워야 했다. 올림픽 초반, 남녀 쇼트트랙 경기가 열린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의 빙질은 예상 밖 악재로 작용해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 대표팀 박장혁과 최민정 선수, 네덜란드의 수잔 슐팅 등이 넘어지며 '중국산 빙판'이 경기 진행에 부적합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경기가 진행되면서 선수들이 차차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과 비교해 중국의 빙질 관리가 미흡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그렇다면 '좋은 얼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간단해 보여도 설명 어려운 '얼음의 미끄러움'

21일 과학계에 따르면 우수한 빙질은 빙판에서 작용하는 마찰력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놀랍게도 얼음이 미끄러운 매우 단순해 보이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고 아직 완전히 수수께끼가 풀린 건 아니다.

얼음이 지면보다 미끄러운 건 얼음 표면에 존재하는 얇은 수막 때문이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 물 층이 윤활유 역할을 해 마찰력을 줄이는 것이다. 약 170년 전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가 처음 발견했고 현대 과학자들이 얼음의 분자구조를 밝혀내면서 사실로 입증됐다. 얼음 표면 근처에 있는 분자들은 원래의 규칙적인 정렬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고 물과 유사한 비정렬적인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자연 상태의 얼음에 형성되는 수막의 두께는 매우 얇아 사람이 얼음 위를 걷거나 스케이트를 탈 때 발생하는 수준의 미끄러움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과거에는 빙판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접촉면의 어는 점이 낮아져 물이 생긴다고 추측했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몸무게 70㎏인 스케이트 선수가 변화시킬 수 있는 어는 점의 정도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래 들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마찰열 녹음'이다. 스케이트가 얼음 위를 활주하면서 생기는 마찰열이 얼음 표면을 녹여 수막 형성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김호영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가만히 서 있을 때 지면보다 얼음이 더 미끄러운 이유는 아직 연구 대상이지만 움직이는 상태에서의 마찰력 저감 현상은 마찰열로 설명 가능하다는 게 최근 학계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역삼투압 이용해 만든 약산성 물 수십 번 뿌리고 온도·습도 조절도 세밀하게

이처럼 얼음이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탓에 빙상 스포츠에서는 빙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우선 얼리는 물조차 pH 5.6~6.0의 약산성 물을 사용한다. pH가 7.0을 넘어가는 알칼리성 물은 산소가 많아 공기층 때문에 얼음의 밀도가 떨어지고 바닥에 깔린 냉각관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고르게 분포시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물을 약산성화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가 바로 RO시스템, 즉 '역삼투'다. 정수기가 물을 정화하는 원리다. 자연 상태에서는 농도가 다른 물 사이에 반투막이 있으면 삼투 현상에 의해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흐른다. 이 때문에 농도가 낮은 물을 얻기 위해서는 흐름을 반대로 바꿔줘야 하는데, 농도가 진한 쪽에 삼투압보다 높은 압력을 가함으로써 반투막을 투과시키는 것이다.

RO시스템을 통해 공기를 빼냈다고 해서 두께 3~5㎝인 빙판을 한번에 얼리는 것은 아니다. 얇은 빙면을 여러 번 쌓아 올려야지만 냉각관의 냉기를 일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링크는 노즐로 물을 얇게 분무해 0.2㎜ 두께의 얼음을 만드는 작업을 250회가량 반복하고, 컬링 경기장은 물을 부어내는 플러딩(flooding) 작업으로 2㎜ 두께의 얼음을 10회 이상 쌓아 올린다.

종목별로 최적화된 얼음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얼음의 두께와 표면온도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빠른 스피드를 내야 하는 쇼트트랙은 표면온도 영하 7℃에 두께 3㎝인 딱딱한 얼음이 요구되고, 반대로 경기 중 얼음 파손 정도가 심하고 랜딩 시 반발력이 강하면 안 되는 피겨스케이팅은 영하 3℃인 5㎝ 정도의 무른 빙판이 좋다.

여기에 컬링 경기장은 미세한 얼음 알갱이들인 페블(pebble)을 흩뿌려 만드는 작업도 추가된다. 빗자루질(스위핑)로 페블을 닦아내 마찰력을 줄임으로써 스톤을 정확하고 빠르게 이동시키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페블을 만들 때 뿌리는 물은 40~50℃의 따듯한 물이다. 같은 냉각 조건에서 높은 온도의 물이 낮은 온도의 물보다 빨리 어는 '음펨바 효과'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1963년 탄자니아의 학생 에라스토 음펨바가 발견한 이 현상은 최근에서야 그 원리가 입증되기 시작해 과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성격 다른 종목 연달아 진행하며 빙질 관리에 어려움 있었던 듯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빙질 논란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성격이 다른 종목을 같은 경기장에서 연달아 진행하면서 발생한 '관리 미숙' 때문으로 추측한다. 올림픽 초반 빙질 논란이 불거지자 최용구 한국 대표팀 지원단장은 "오전 피겨 경기를 마친 뒤 2시간 이내에 쇼트트랙 경기장으로 바꾸는 상황에서 유지 문제를 겪는 것 같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빙판 관리를 책임진 배기태 아이스테크니션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경기장의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는 테스트 이벤트를 충분히 거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짚었다.

최다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