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버려야 대통령이 산다

입력
2022.02.22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나랏일 투표라면 한번도 빼먹지 않으며 민주 시민을 인증해온 친구는 이번 대선에서 진지하게 기권을 고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최악을 막으려면 차악이라도 가려야지" 훈계 한번 했다가 "그래서 뭐가 달라지느냐"는 날 선 체념 앞에선 말문이 막혀버렸다.

군부 독재에 맞서 쟁취한 민주주의의 꽃, 대통령 직선제. 그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대선에 질려 하는 게 어디 이 친구 한 사람뿐일까.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또 한번 희망고문을 부추기기엔 5년마다 우리가 겪은 실망과 좌절, 배신의 상처는 너무 쓰리고 아팠다.

외신도 조롱할 만큼 '역대 최악'으로 등극한 이번 비호감 대선이 욕을 먹는 건 대장동도 샤머니즘도 법인카드도 구둣발 때문만도 아닐 거다. 대선 이후 나와 가족, 이웃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죄 아닐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이 치르는 첫 대선이란 게 무색할 정도로 시대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양강 후보에게 미래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정권심판론만 부르짖는 제1야당 후보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다. 그의 시대착오적 노동관, 호전적 냉전주의 사고는 민주화 이후 다져온 합의와 가치를 뭉개 버릴까 우려스럽다. 여당 후보의 국정비전도 안갯속이다. 실용과 국민 여론을 핑계 삼아 갈지자 행보다.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선심성 공약은 지켜도 걱정이다.

대선 이후 보이는 미래는 하나다. 선거 때보다 더 증오하고 분노하며 서로를 잡아 먹을 듯 싸우는 '진영 내전'의 시작. 협치와 상생, 통합이 취임사 단어로만 존재하는 데 그친다면, 반쪽짜리 대통령은 이겨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생결단식 정치에 나라는 또 두 쪽 날지 모른다.

더 이상 사람의 선의에 기댈 수 없다면,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역대 대통령 시대를 겪은 김종인 박사는 최근 펴낸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에서 힘주어 말한다. '대통령 후진국'이라는 불행의 역사를 끊기 위해 이기면 모든 걸 다 갖는 승자독식 대통령제 자체를 손봐야 할 때라고. '누구를 뽑을까'에서 '어떻게 바꿀까'로 질문의 틀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여왔지만, 개헌은 늘 힘을 받지 못했다. '내각제는 우리 정서와 맞지 않아서', '국민이 대통령제를 더 선호하니까', '국면전환용 꼼수 아니냐'. 개헌 논의는 35년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게 과연 최선일까.

정치부 시절 선거제도 취재를 위해 독일을 다녀온 적이 있다.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결정하는 의회중심제 독일은 패자도 지지자들을 대변하고, 다양한 정당이 연합해 국정에 참여한다. 제도화된 협치 모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제도는 절대 선(善)이란 게 없이 진화할 뿐"이라는 독일인들의 태도였다. 민의를 100% 반영하기 위한 정치 제도를 찾기 위해 독일 정치권과 국민은 끊임없이 변화를 고민하고 수용했다.

막장 드라마도 한두 번이다. 계속 보면 질리고 물린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당선증을 받자마자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고, 나누겠다고 결단할 수 있는 미래의 대통령을 보고 싶다. 대통령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분명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래야 국민도, 대통령도 산다.

강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