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입력
2022.02.2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각국의 외교적 보이콧으로 썰렁했던 이번 동계올림픽과 달리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은 100개국 정상급 인사가 참석하는 축하 분위기였다. 그런데 8월 8일 개회식이 끝날 무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통역을 대동하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을 건네자 부시가 놀란 표정을 짓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러시아가 이날 남부에 국경을 접한 조지아를 침공했다는 사실을 통보한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21세기 첫 전쟁이었다.

□ 러시아군은 조지아 북부 분쟁지역 남오세티야를 조지아군이 선제 공격해 이 지역 관리에 참여하던 러시아 군인이 희생됐다는 것을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다. 대통령에서 총리로 자리 바꿈한 지 얼마 안 된 푸틴은 외유 중이었고,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휴가인 상태에서 벌인 전쟁에 전 세계가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조지아의 전력은 애초 러시아의 상대가 아니었다. 내심 기대했던 미국과 유럽의 지원도 없자 조지아는 5일 만에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 러시아가 인접국 내 러시아인 보호를 침략 이유로 삼은 것은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합병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지아에서 전면전으로 위세를 과시했다면 크림반도에서는 제한적인 군사 작전과 정치 공작을 벌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병력을 증강해 미사일 훈련까지 벌이면서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군에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 러시아가 전쟁으로 무엇을 얻을지는 조지아의 그 후를 보면 얼마간 가늠된다. 러시아는 조지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경계했다. 전쟁으로 그 속도는 늦췄을지 모르지만 반러 감정에 불을 지펴 조지아의 친서방화는 도도한 물결이 되어 버렸다. 조지아가 제1외국어를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바꾸고 옛 소련 시절 국명 그루지야를 영어명으로 바꿔 불러달라고 각국에 요청한 것도 그때부터다. 러시아가 무력으로 우크라이나 일부를 편입한다면 과거 형제국 우크라이나 역시 앙숙이 되어 서방으로 더 냉큼 달려갈 게 뻔하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