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15)의 도핑 논란이 올림픽 출전 나이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의 도핑 사건으로 러시아 피겨계의 가학적인 훈련 방식이 조명되면서 어린 나이의 선수들이 신체적ㆍ정신적 학대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20일(현지시간) AP통신은 "이번 (올림픽 출전 나이에 관한) 논의는 선수들의 섭식 장애나 신체 이미지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며 피겨스케이팅 종목 평가 기준인 '기술'과 '예술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선 외모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먼저 피겨스케이팅에서 높은 기술 점수를 받기 위해선 점프 회전수와 속도가 중요하다. 몸무게가 가벼울수록 회전이 쉽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은 지속적으로 '키가 커서는 안 된다'거나 '더 말라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17세 미만의 어린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4회전 점프를 할 수 있는 것도 가벼운 무게 탓이 크다고 미국 NBC방송 등 외신은 분석했다.
미국의 아이스댄싱 선수 케이틀린 하와엑(25)은 수년간 섭식 장애를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전하면서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교육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는 거식증에 시달리다 19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대중의 공격적인 신체 평가도 여성 피겨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부담을 주는 주요 원인이다.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알리사 리우(17)는 3년 전 14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정적인 공격 때문에 힘겨워했었다고 AP통신에 밝혔다. 그는 당시 "왜 사람들이 14살짜리를 공격하려고 하는지 너무 이상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 나이 기준 상향 논의는 이런 문제점에서 비롯됐다. 선수들이 자신의 신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성장시킬 시간이 더 많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몇몇 선수들은 나이 기준이 높아지면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연장되거나 부상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위스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알렉시아 파가니니(21)는 "나이 기준이 높아지면 오랜 기간 활동하는 스케이트 선수를 키우게 되거나 성인이 된 뒤에도 꾸준히 실행할 수 있는 기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피겨스케이팅 평가 기준에 '예술성'이 포함되는 한 나이 조정 효과에 한계가 있을 거란 지적도 적잖다. 예술점수는 심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기에 결국 '심판에게 어떻게 아름답게 보이느냐'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대니얼스 콜로라도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술성이 평가받을 땐 '내 몸이 그 기준에 맞나?'라는 의문을 갖게 돼 섭식 장애 가능성이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나이 논란이 이어지자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지난 18일 선수들의 시니어 대회 출전 최소 나이를 만 15세에서 만 17세로 올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조정은 올해 말 ISU 집행위원회 투표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