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독재자” 외친 美 농구선수 노벨평화상 후보에

입력
2022.02.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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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노벨 평화상 그 질긴 악연] 
美 NBA 에네스 칸터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 
“독재자 시진핑, 中 정부 잔인”… 비판 선봉에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주장하며 각성 촉구도 
2010년 류샤오보 노벨상에 中-노르웨이 단교 
2020·2021년 ‘홍콩 민주화운동’이 후보 올라


시진핑 주석을 ‘독재자’로 칭하며 중국 인권 문제에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온 미국 농구선수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2020년과 2021년 홍콩 민주화운동이 노벨상 후보 명단에 포함된 데 이어 중국은 다시 껄끄러운 처지에 놓였다.

20일 대만 자유시보 등에 따르면 30명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은 17일 에네스 칸터 프리덤(30)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를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릭 스콧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는 인권과 자유를 추구한 용감한 투사”라며 “노벨상 후보로 지명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같은 당 데이비드 발라다오 하원의원도 “전 세계 인권 유린을 자각하도록 노력해온 프리덤을 지지하게 돼 영광스럽다”고 글을 올렸다. 터키 태생인 에네스 칸터는 지난해 11월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서 에네스 칸터 프리덤으로 개명했다.

‘프리덤(Freedom·자유)’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인권 문제를 앞장서 제기한 스포츠 스타였다. 특히 중국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을 비판하고 홍콩과 대만의 정치적 자유를 옹호해왔다. 지난해 10월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잔혹한 독재자 시진핑과 중국 정부여. 티베트는 티베트인들의 것”이라고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날 선 메시지를 담았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지난달에는 “중국 정부는 잔인한 독재정권이다. 그들은 존중과 우호의 올림픽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면서 선수들의 올림픽 보이콧을 촉구했다. 이에 중국농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전 NBA 선수 야오밍이 프리덤을 중국으로 초대했지만, 그는 “신장위구르 수용소와 티베트, 홍콩, 대만을 방문하려는데 시 주석이 승인하면 알려달라”고 맞받아쳤다. 이처럼 거침없이 중국을 저격해온 그의 발언들은 검열에 걸려 중국 매체와 SNS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NBA의 괘씸죄에 걸려 프리덤은 소속팀에서 쫓겨났다.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다 10일 휴스턴 로케츠로 트레이드됐는데, 팀을 옮긴 지 나흘 만에 웨이버 공시하면서 사실상 그를 방출했다. NBA에서 중국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유일한 양심으로 불려온 선수가 졸지에 거취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에 아랑곳없이 프리덤은 트위터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가끔은 다음 달 월급보다 신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중국 매체들은 프리덤의 노벨상 후보 추천은 쏙 뺀 채 “철없는 미국 선수가 중국을 비방하다 소속팀에서 퇴출됐다”는 소식만 전했다.


중국은 노벨 평화상과 유독 악연이 잦다. 2010년 중국 반체제운동가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자 중국은 곧장 책임을 물어 노르웨이와 단교했다. 노벨 평화상 후보는 각국 선출직 의원과 정부 각료, 대학 교수, 역대 수상자 등이 추천하는데 노르웨이 의회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최종 결정하는 노벨 위원회 심사위원 지명권을 갖고 있다.

이후 중국과 노르웨이는 9년이 지나서야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하지만 2019년 격렬한 시위로 중국에 맞섰던 홍콩 민주화운동이 2020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포함되자 중국은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며 맞섰다. 당시 노르웨이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중국은 내정에 개입하기 위해 노벨 평화상을 이용하려는 그 누구의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2021년 미 의회 초당파 상원의원 9명은 또다시 홍콩 민주화운동을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며 중국을 재차 자극했다. 중국을 겨냥한 상징성을 갖춘 노벨 평화상 후보의 역할을 올해는 미국 농구선수 프리덤이 맡은 셈이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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