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교수= "같은 기름으로 5번이나 실험을 한 건가요?"
▷기자= "5개 모두 다른 회사의 제품입니다만..."
▶A교수= "화학적으로는 99.9% 같아 보이는데요?"
한국일보가 최근 실시한 '고올레산 해바라기유 5개 제품 성분 시험 결과'를 살펴본 유지화학 전공 교수는 깜짝 놀라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도 '0.1%'가 불안해 교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지방산 조성 △올레산 함량 △리놀레산과 리놀렌산 함량 △비타민E 함량 △산가 이외에 해바라기유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 또 있는지. 돌아온 답은 모두 'No'였다.
본보 보도로 치킨 프랜차이즈 bhc의 전용 튀김유가 다른 고올레산 해바라기유와 품질 차이가 없는 데도, 가맹점에 비싸게 강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비슷한 신고건에 대해 'bhc는 잘못이 없다(무혐의)'며 면죄부를 줬다.
bhc 가맹점주협의회는 2019년 4월 "본사가 품질 차이에 대한 설명 없이,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를 납품가의 2배에 달하는 가격에 필수품목으로 지정해 판매하고 있다"며 신고한 것인데, 공정위가 bhc 본사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심지어 이 사안은 '심사관 전결'로 처리됐다. 상위기구인 위원회에 상정해 심의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직접 조사한 심사관 단계에서 처분한 것이다.
왜 무혐의 처분이 나왔을까. 공정위가 보내온 '심판 결과 요지서' 내용은 이렇다. ①가맹사업의 통일적 운영과 관련된 것으로서 ②bhc 치킨 조리에 필요한 원·부재료로서 맛과 품질을 결정하고 ③bhc가 사전에 정보공개서 등을 통해 특정 상대방과 거래해야 하는 점을 미리 알렸다는 이유였다.
bhc 소명자료를 토대로 프랜차이즈업 특성과 가맹사업법 절차만 따져본 것으로, '구속조건부 거래' 행위에 대한 형식적 판단을 내린 셈이다. 공정위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bhc 본사가 사전에 공지하고 ①케첩을 시중 제품과 0.1% 정도만 다르게 가공한 뒤 ②이를 본사의 필수 구매 품목으로 정해 라벨을 바꾸고 ③본사 구매 가격보다 2배 비싸게 팔아도 문제 삼기 어렵게 된다.
공정위가 가맹점에 폭리를 취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프랜차이즈 본사에게 쥐여준 것 아니냐고 비판받는 이유다. 최승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식품업계에선 영양학적으로 거의 같더라도 0.01% 성분 차이로 다른 제품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며 "통일적 운영이 요구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 재료를 필수품목으로 지정해 폭리를 취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bhc처럼 미세한 재가공 과정을 거친 뒤, 본사 전용 제품으로 '라벨을 갈아 끼워' 폭리를 취해도 막기 어렵다는 얘기다.
'라벨 갈아 끼우기' 표현이 거슬린다면, bhc는 자사 고올레산 해바라기유만의 차별성을 설명하면 된다. 점주들이 bhc 전용 튀김유를 시중보다 30% 이상 비싼 9만750원에 사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bhc는 대답을 내놓지 않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2018년 이 문제를 제기했던 bhc 가맹점주협의회는 본사의 '찍어 누르기식' 압력에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상태다. 본사 압력을 못 이기고 가맹점 운영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bhc는 심지어 본사 갑질과 비리 의혹를 보도하는 기자들에게는 1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걸기도 했다. 물론 bhc가 모두 패소하고 있다.
bhc는 본보가 보낸 24개 질문 중 18개에 '경영상 비밀' 혹은 '해당 없음'이라고 답했다. 치킨 포장 박스에도 적혀 있는 bhc 전용 튀김유의 품질을 자랑해 달라는 취지의 질문에도 '기밀'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bhc는 창사 이래 최고이자, 경쟁사의 3배에 달하는 영업이익률(32.5%)을 감춰야만 하는 경영상 기밀이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bhc가 답할 수 없다면 공정위가 답해야 한다. 다른 제품과 별 차이가 없는 기름을 가맹점에 강매해 폭리를 취한 bhc가 정말 잘못이 없는지. 이런 행위가 공정위의 설립 목적인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쟁 보호'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