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일까?

입력
2022.02.19 04:30
22면

‘손님’은 찾아온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손’에다가 ‘님’을 붙인 분명 높임말이다. 드라마에서는 기다리던 손님을 맞는 풍경이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손님’을 톺아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손님에는 방문객도 있고 경제 활동에서 만나는 사람도 있다. 먼저 방문객을 보자. 드라마와 달리, 속담에서 손님은 대접할 부담이 큰 이들이다. ‘가는 손님은 뒤꼭지가 예쁘다’에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빨리 돌아가는 손님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보인다. 철없는 ‘아이 손님이 더 어렵다’는 구체적인 말도 있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칠월 손님은 범보다 무섭다’는 날이 덥거나 식량이 궁한 달에는 집에 손님이 올까 봐 걱정하는 마음조차 담겼다. 물론 손님을 잘 모시는 문화를 전제한 말이지만, 대나무 숲에는 집안을 앞세워 자신을 희생한 젊은 어머니들의 외침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로 만나는 손님도 대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속담 ‘장사치의 손님’은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이라면 누구든 잘 대하는 법이라는 말인데, 마음에 없더라도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잘 대접한다는 뜻도 된다. 그런 배경에서 ‘고객님’이 ‘손’에 대한 깍듯한 호칭으로 등장했을 것이다. ‘고객’의 ‘고’는 ‘높다’가 아니라 ‘돌아보다’는 뜻의 한자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고객’에 대해, 쓸 수 있지만 ‘손님, 단골손님’으로 순화하여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굳이 손님을 불러야 할 상황이라면 ‘고객님’ 대신에 “안녕하십니까?”라고만 표현해도 된다고 권한다. ‘고객님’은 결국 ‘손님님’이다. 분명히 일종의 과잉 의전인데도, 적어도 그 정도로는 불려야 마음에 차는 사회라면 그곳이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고객님, 찾으시는 가방은 지금 없으세요’처럼 이상한 높임말이 나오는 데에는 ‘고객님’ 정도는 되어야 대접받는 것같이 느끼는 손님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본뜻은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물도 돈인 지금 세상에는 안 맞는 말이다. 자칫 물 쓰는 데 대한 잘못된 태도를 빚을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만약 ‘손님은 왕’도 올바른 비평 없이 자리 잡은 말이었다면, 언중의 판단을 흐리게 할 것이다. 손님은 언제부터 왕이었을까?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은 맞을까? 그렇게 생각하도록 두어도 우리 사회는 건강할까? 우리 사회에 비집고 들어앉은 ‘손님은 왕’을 곰곰 되씹어 본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