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10만'인데 영업시간 연장 ... '생색내기'로 전락한 거리두기

입력
2022.02.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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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하루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을 돌파한 날, 정부는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 제한 시간을 기존 오후 9시에서 10시로 1시간 '찔끔' 연장했다. 거기에다 "21일부터가 아니라 19일부터 당장 적용한다"는 점까지 덧붙였다. 당장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고작 이틀 빨리 1시간 연장해 놓고 선심 쓰듯이 '완화'라고 얘기하는 정부에 화가 난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반면 방역 전문가들은 "오미크론 확산세가 본격화하는 시기에 정부가 거듭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식당과 카페의 영업시간을 1시간 연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위험 등 이번 거리두기 조정안에 대한 판단 근거를 두고는 "확인 뒤 답변하겠다"고만 밝혔다. 정부는 '방역'과 '민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는 묘수로 '1시간' 카드를 꺼냈다지만, 결국 그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할뿐더러, 거리두기 자체가 주먹구구식이었음을 자인한 꼴이란 지적이다. '사적모임 4·6·8인', '영업시간 9·10시' 두 가지 요인으로 이리 묶고 저리 풀다 보니 '짧고 굵게'라는 사회적 방역의 원칙 자체가 무너진 채 정부의 '생색내기'용으로 전락했다.

'6인·10시' 19일부터 3주간… 자영업자들 "무의미한 결정"

18일 이기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1통제관은 "9주간 지속된 고강도 거리두기로 자영업자의 민생 경제에 어려움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19일부터 3월 13일까지 3주간 모든 시설의 운영시간을 오후 10시로 조정하고, 인원 제한은 6명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 통제관은 "자영업자 입장에선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여러 의견 수렴과 숙고 끝에 내린 불가피한 결정임을 양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이런 조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창호 전국호프연합회 대표는 "이번엔 오후 9시 영업제한이 평소보다 길었던 것일 뿐, 원래 영업제한 시간은 늘 10시까지였다"며 "사실상 9시나 10시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왜 굳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생경제' 운운했으면 적어도 영업시간을 자정까지라도 늘려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신호 준 꼴" ...일상회복위 방역분과 사퇴까지

전문가들은 펄쩍 뛴다. 오미크론 유행이 확산하고 있는 마당에 아무런 실질적 효과도 없는 영업시간 확대를 굳이 강행함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만 준다는 비판이다. 매일 신규 확진자 최다치 기록이 깨지면서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10만9,831명으로 역시나 사상 최다치를 기록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방역지침은 경제부문에 비하자면 일종의 중앙은행 금리와도 같은 것"이라며 "방역지침을 통해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읽어내는 것인데, 확진자 10만 명이 넘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방역지침을 완화하겠다'라는 신호를 주면 방역 수칙을 어기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방역 전문가가 정부의 일상회복지원위원회 방역의료분과에서 사퇴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재갑 한림대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장 상황은 너무 심각한데, 정부는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몇 명, 몇 시 ... 무의미한 숫자 조합이 된 거리두기 바꿔야

딱 부러지는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영업제한을 1시간만 늘린 것이 어떤 근거에 따른 결정이냐'는 질문에 "확인 후 답변하겠다"고만 대답했다. 어떤 효과를 볼 수 있고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는지, 과학적 검토 과정이 없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무슨 근거가 있겠냐는 냉소도 나온다. 이제 오미크론 대확산의 초입이면 K방역의 역설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좀 더 길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니 방역을 해제하라면 최소한 정점은 찍은 뒤에나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음에도, 정부 측 인사들은 '종합적 검토'라는 이름 아래 때가 될 때마다 '방역 완화'를 거듭 언급해서다. 그 '말빚'을 갚기 위해 성의라도 보인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인원과 영업시간 제한, 2개 조합으로 거리두기를 조절하는 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2년간 45차례나 이런 방식으로 거리두기를 조정해왔는데, 이제 거의 무의미한 숫자 놀음이 됐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사실 이제 일행 숫자가 4명이든 10명이든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행정 편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숫자놀음이 이제는 정치적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크다"고 지적했다. 천은미 목동이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몇 명, 몇 시처럼 형식적인 보여주기를 넘어 치료제 처방 문제 개선, 청소년 방역패스 문제 등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