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를 두고 치열한 패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지역 최대 인프라 투자국인 중국이 정치 영향력에선 우위를 차지했지만, 지지도에서는 미국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싱가포르 정부 싱크탱크인 동남아연구소(ISEAS)가 동남아 10개국 정부ㆍ학계ㆍ언론계 등 전문가 집단 1,677명을 상대로 지난해 연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이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중국(54.4%)을 꼽았다. 미국이 29.7%로 뒤를 이었다. 일본(1.8%) 유럽연합 영국 호주(각 0.8%), 한국(0.6%) 등은 영향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다만 응답자의 76.4%는 “중국이 역내 정치력을 더 강화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답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경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대해선 37.4%만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국가 지지도에선 미국이 중국을 앞섰다. 응답자의 57%는 미국을 지지한다고 밝혀, 43%에 그친 중국보다 높은 신뢰를 보였다. 미국은 싱가포르 등 대다수 국가에서 고른 신뢰를 얻었으나, 중국은 투자와 원조가 집중된 캄보디아ㆍ라오스ㆍ브루나이에서 몰표를 받았다.
미국에 대한 지지와 중국에 대한 거리두기는 지역 내 여러 분쟁 이슈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현재 베트남ㆍ필리핀 등 동남아 해양국가들과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치열하게 대치 중이다. 또 중국은 메콩강 상류에 건설한 댐으로 인해 하류 지역 가뭄 피해 연관성을 놓고 인도차이나 5개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도 남중국해와 메콩 갈등(46.2%)이 중국과 동남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최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로 인해 응답자 과반(58.5%)은 미국과 인도ㆍ호주ㆍ일본이 참여하는 비공식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가 지역 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쿼드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협의체인 만큼, 지역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에 대한 적절한 억제력이 필요하다고 본 셈이다. 쿼드에 반대하는 전문가는 13.1%에 불과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에 대해선 입장차가 극명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이 민주세력과의 접촉을 막고 있는 쿠데타 군부를 배제한 결정에 대한 ‘지지’와 ‘반대’는 각각 37.0%와 33.1%로 팽팽했다. 향후 대응 방식에서도 응답자의 42.5%는 ‘아세안이 더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 반면, 30.1%는 ‘미얀마 군부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ISEAS는 "개별 아세안 회원국과 미얀마와의 이해 관계가 모두 달라 하나의 일치된 의견이 형성되기 어려웠다"며 "다만 미얀마 내 전문가 집단의 43.4%가 아세안의 강력한 군부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동남아 각국이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