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연명의료 거부가 거부되는 현실

입력
2022.02.20 18:00
26면

편집자주

국민 10명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말기암 노인, 연명의료 거부의사 밝혔지만
가족반대로 원치 않던 연명의료 받아
환자의 자기결정권 여전히 제약 많아

7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의식이 없고, 기관지에는 관이 삽입된 상태였다. 말기암 환자였다. 응급실 담당의사는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환자가 직접 작성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전산망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환자는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연장을 위한 여러 가지 의료기기에 몸을 맡겨야 했다. 원치 않는 연명의료를 받게 된 할아버지에겐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편도선암 진단을 받았던 그는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통해 10년간은 큰 문제없이 지내왔다. 그러다 가슴통증이 있어 검사를 해보니 폐암이 새로 발견됐다. 암은 이미 뼈와 간에 전이되어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3차례 항암제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퇴원했다. 한동안 집에 머무르다 상태가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 폐렴이 발생했다. 폐렴 치료 중 의식이 갑자기 저하되면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맥박이 거의 만져지지 않자, 요양병원 의사는 심폐소생술과 기관지 삽관까지하고 구급차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한 것이었다.

환자는 상태가 악화되면 연명의료는 거부한다는 의향서를 작성했고,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전산망에 등록했다. 그런데 왜 요양병원에서는 심폐소생술과 기관지 삽관을 했을까.

대부분 요양병원은 규모가 작아 윤리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어서 연명의료결정을 할 법적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으로선 응급조치만 시행하고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대학병원은 왜 또 이 할아버지에게 중환자실 연명의료를 받게 했을까.

환자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환자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병원은 연명의료를 강제로 중단할 수 없다. 그래서 중환자실 의사는 이 문제를 병원 윤리위원회에 의뢰했다. 윤리위원회는 환자 상태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이며 폐렴으로 인해 임종에 임박했다고 판정,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인공호흡기를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가족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 경우 병원이 가족의 의견에 반해 연명의료 중단을 하려면 법원에 소송을 해야 한다.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후, 많은 환자들이 임종과정에 연명의료로 인한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의료현장에는 여전히 이런 사각지대가 남아있다. 이 할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중단하고 편안히 임종할 법적 권리가 있었지만, 결국 중환자실에서 각종 관들을 삽입한 채 고통의 시간을 3주나 더 견뎌야 했다. 연명의료로 연장된 21일의 의미에 대해 가족들은 외국출장 중이던 환자의 아들이 귀국해 임종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를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었던 환자가 정말로 무엇을 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금년 1월 기준으로 118만 명 이상이 작성했다. 65세 이상 인구(900만 명 추산) 중 13% 이상이 서류를 작성하여 등록해둔 상태다. 그러나 의료기관 중 연명의료결정법을 적용할 수 있는 곳은 10%에 불과하고 그나마 환자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실행되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임종기에 자신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나 자식에 대해선 최대한 생명을 연장해주길 바란다.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원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아직 괴리가 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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