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아들이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낸 부모들의 고민은 하나같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점. 씩씩하게 학교에 다니던 아이에게 한 달쯤 지나 친구는 많이 사귀었는지 물었더니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예상보다 훨씬 잘 적응하는 것 같아 기뻐하면서 어떤 아이냐고 물어봤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하더란다. "계속 마스크 쓰고 있어서 얼굴은 한 번도 못 봤어."
마스크와 격리가 일상화된 것이 벌써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처음 팬데믹이 시작될 때만 해도 이렇게 사태가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3년은 정말 긴 시간이다.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라면 소중한 학창시절을 통으로 날려, '동창생'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워버릴 만큼의 시간이다. 대학에서도 사태 초기에는 신입생 환영회, MT, 대면수업을 못하는 점이 아쉬운 정도였는데 3년 차에 이르고 보니 학생회 구성이 불가능해지고, 활동이 불가능해진 동아리들이 무너지는 등 학생 상호 간의 관계와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붕괴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이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가 당연한 것으로 고착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가오 판츠'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우리말로 '얼굴 팬티'라는 뜻인데 마스크가 마치 얼굴에 쓴 속옷처럼 늘 입고 다녀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벗고 남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뿐 아니라, 마스크를 써서 타인과 거리를 둬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니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지는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는 위기감도 과장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따른 새로운 만남의 형태도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화상 채팅을 통한 만남이 대표적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었지만 적응을 하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편안히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느껴진다. 전국 여기저기, 심지어 다른 나라에 있는 친구들과 컴퓨터 앞에 맥주 한 잔씩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이 시대가 아니었으면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존의 인간관계가 약화된 것은 이후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보다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토대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얼굴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된 초등학생의 이야기는 마냥 안타깝기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2020년 코로나의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던 시기에 신입생들이 입학은 했는데 한 학기가 지나도록 한 번도 학교에 오지 못해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서 핸드폰으로 학교 이곳저곳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학생들과의 채팅방에 올렸던 적이 있다. 며칠 전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이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마침내 확신이 들었다는 듯이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학과 교수님 얼굴을 외우고 싶어서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어요. 곽 교수님 맞으시죠?" 이 학생도 사람이 무척 그리웠던 것이로구나 싶어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마스크에 가려진 웃음을 서로 내보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