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키즈'에서 '톱10' 올림피언으로 꿈 이룬 유영·김예림

입력
2022.02.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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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 '트리플 악셀' 착지 성공하며 안정적 연기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김예림, 우아한 연기로 팬심 사로잡아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 보여드려 기뻐"
12년 경쟁자이자 동반자, 서로 안으며 축하

'연아 키즈' 유영(18)과 김예림(19)이 꿈에 그리던 올림픽 데뷔 무대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세계 톱10의 자리에 올랐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김연아의 아름다움에 반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온 지 12년 만이다. 유영은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트리플 악셀(3바퀴 반 점프)' 착지에 성공하며 김연아 시대 이후 한국 피겨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김예림은 안정적인 점프와 빼어난 연기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영은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4.16점, 예술점수(PCS) 68.59점, 총점 142.75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 점수 70.34점을 합쳐 최종 총점 213.09점을 기록했다. 본인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개인 최고점(223.23)을 깨진 못했지만, 김연아(2010년 대회 228.56점·2014년 대회 219.11점)에 이어 역대 한국 선수 여자 싱글 올림픽 최고점에서 세 번째 순위에 올랐다.

이날 유영은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을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이후 긴장감을 잊은 듯 활짝 웃으며 연기를 이어나갔다. 두 번째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은 완벽에 가까웠다. 경기를 마친 뒤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유영은 "쇼트와 프리에서 큰 실수가 없었던 것 같아서 너무 만족스럽다"며 "점수 나왔을 땐 조금 의아했지만 그래도 제 연기에 너무 만족한다. 기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피겨 6위는 '피겨 여왕' 김연아를 제외하고 한국 여자 싱글 선수의 올림픽 최고 성적이다. 도핑 파문에 휩싸인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의 기록과 순위(4위)가 인정받지 못하면 유영은 김연아, 차준환에 이어 한국 피겨 선수로는 역대 3번째로 '톱5'에 오를 수 있다. 유영은 "5위든, 6위든 너무 만족한다"며 웃었다. 이어 "잘한 것 같다.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올릴 수 있는 점수가 많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오늘보다 좋은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유영은 쇼트에 이어 프리에서도 트리플 악셀을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다만 쇼트에선 다운그레이드(점프의 회전수가 180도 이상 모자라는 경우) 판정으로 감점을 받았고, 이날 프리에선 언더로테이티드(점프의 회전수가 90도 이상 180도 이하로 모자라는 경우) 판정으로 감점을 받았다. 유영은 "악셀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것 같다. 더 노력하고 연습을 많이 해서 다 돌 수 있게끔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예림은 기술점수(TES) 68.61점, 예술점수(PCS) 66.24점, 최종 총점 202.63점으로 9위를 차지했다. 트리플 악셀과 같은 고난도 기술은 없었지만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하고 우아한 동작이 돋보였다. 김예림은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드려서 기쁘다. 판정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다음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팬들의 관심이 이어지면서 '피겨 장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15일 공주 같은 표정으로 쇼트 연기를 끝낸 뒤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반전 매력에 네티즌들이 '피겨 장군'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 것이다. 김예림은 "제가 성격이 털털하긴 하다"며 "마지막 점프(트리플 플립)가 아쉬워서 그랬다. 링크장을 나가는 데 점프를 뛰었던 곳이 보였다. 저도 영상을 돌려보니 표정이 왜 저러나 싶더라"며 웃었다.

이날 무대를 마친 뒤 유영은 먼저 연기를 마치고 기다리던 김예림과 서로를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둘은 국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피겨 간판이다. 경쟁자이지만 오랫동안 같은 꿈을 향해 달려왔다. 서로의 힘듦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유영은 "어릴 때부터 같이 준비하고 훈련했던 언니다. 올림픽에 와서도 잘 끝낸 것 같아서 기뻤다. 끝나자마자 언니가 안아 줘서 울컥하고 한 번 더 눈물이 났다. 언니한테도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예림은 "어릴 때부터 경쟁하면서 같이 컸다. 올림픽에 같이 출전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서로 잘 알아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사실 이야기를 할 여유가 많이 없었는데 오늘은 유영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베이징 최동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