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헛 공방할 때... "어른들이 남긴 환경문제 짊어지기 싫어요"

입력
2022.02.20 14:00
"현 정부 온실가스 감축 계획 역부족"
청소년기후행동, 헌법소원 추가 제기
초등생들도 "현실적인 대안 마련해야"
그러나 대선에서 기후 위기 비전 실종돼

0.5도.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는 상황 속, 인류가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 지켜내야 할 지구온도 상승폭입니다. 앞으로 지구온도가 0.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이미 1도가 올랐습니다. 현재 이상 기후로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고요. 한 예로 폭염은 이제 상시적 재해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상관측 111년 이래 최악의 폭염이 덮쳤던 2018년을 볼까요. 폭염 일수는 35일을 기록했고 가장 긴 폭염은 22일 연속 이어졌습니다. 이상 기후로 인한 인명피해·경제적 손실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는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맞는 건 어린이·청소년과 같은 미래세대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어른들에게 책임 있는 자세 및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처럼요.

어른들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등을 개최하며 성실히 대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재인 정부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28%에서 40%로 높였습니다. 또 탄소중립 목표해인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고요.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입니다.

미래세대의 반응은 어떨까요.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지배적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최근 헌법소원을 추가로 낸 것도 이 같은 실망 내지 좌절감 때문입니다.


청소년들 "기후위기 대응에 역부족" 헌법소원

지난 16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모였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제10조), 환경권(제35조) 및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각종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2년 전에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는데요. 지난해 이 법이 폐지되고 탄소중립기본법으로 대체되면서 헌법소원을 추가로 냈습니다. 헌법소원 내용을 수정한 셈이죠.

'법이 바뀌었으면 이전의 법보다 나아지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청소년기후행동은 탄소중립기본법 역시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에 따르면 앞으로 우리나라에 허용된 탄소 배출량은 26.8억 톤입니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보고서가 내놓은 전 세계 허용 탄소 배출량(4,200억 톤)을 인구 비율로 나눈 값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0.5도의 기온 상승폭을 지키려면 그 이상 배출해선 안 된다는 얘깁니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 NDC를 2018년 대비 40%로 잡았다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그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까지 56.21억 톤의 탄소를 써버리게 된다는 게 청소년기후행동의 계산입니다. IPCC 허용치를 2배 이상 초과한다는 거죠.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 정책을 바꾸려면 ①탄소중립기본법 제8조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 범위 내에서 감축해야 한다'는 규정인데요. 법적 기준을 현행 '35% 이상'에서 더욱 높여야 정부가 공격적인 온실가스 저감 정책을 실행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또 ②법에 2031년부터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없다는 점도 그들의 지적입니다.


진정성 있는 기후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건 미래세대의 공통된 요구입니다. 지난달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전국 594개교 초등학생 1만4,617명이 쓴 기후위기 손편지를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요. 공개된 편지를 보면 굉장히 따끔한 지적들이 줄을 잇습니다.

부산 기장초등학교 강다향 어린이는 "형식적인 정책이 아닌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요. 제주 남광초등학교 강창우 어린이는 "저희 아이들은 어른들이 남긴 환경문제를 짊어지기 싫습니다. 저희에겐 짊어질 의무도 없지만 어른들은 짐을 덜 의무가 있습니다"고 남겼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 등 비전 없는 20대 대선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판가름할 대선이 다음 달 치러집니다. 바야흐로 '세계적 대전환의 시대'라며 기후 위기 또한 중요 의제로 손꼽히는데요. 그런데 여러분은 대선 후보들의 기후 공약을 알고 계시나요. 아마도 기억에 남는 언급은 'RE100'(Renewable Energy 100%)이 전부일 것 같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RE100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라고 물었는데 윤 후보가 "RE100이 뭐죠?"라고 되물으며 이슈가 됐죠. 이후에도 'RE100이란 세계적 흐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보다는 "장학퀴즈냐"라는 공방만이 부각돼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참고로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자발적 캠페인입니다. 한국 기업 중에선 SK그룹, 아모레퍼시픽, 한국수자원공사 등 10여 개 회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애플, 구글, BMW 등 유수한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업체에 RE100 가입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추세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RE100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대두될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자, 그럼 대선 후보들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살펴볼까요. 여기선 주요 대선 후보 4명의 '에너지 믹스' 공약을 간략히 소개해 드릴 텐데요. 각 후보별 자세한 기후 공약은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제작한 '모두의 기후정치' 홈페이지(https://climatepoliticsforall.org/cp4a_map)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에너지 믹스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원자력발전, 화석 발전 등 에너지 생산 비중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아래는 후보별 에너지 믹스 공약 비교표인데요. 그린피스와 KBS가 공동으로 각 후보 캠프에 질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석탄을 대체할 발전으로 원전과 재생에너지 중 어떤 것을 더 강화할 것인지 후보별로 차이를 보이네요. 그런데 제가 이재명 후보, 윤석열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2030년 화석에너지 발전 비중을 진하게 표시한 게 보이시나요.

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은 미래 세대에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화석 발전을 어떻게 잘 줄여나갈까입니다. 그런데 세 후보의 2030년 화석에너지 발전 비중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원전을 늘릴 건지 줄일 건지에 가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은 아닐까요.

물론 화석 발전의 대안으로 원전을 늘릴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릴지 논의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문제는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는 후보들이 2050년까지 원전을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겁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원전 비중을 정부 안보다 늘려야 한다는 후보들은 원전 없이 탄소중립이 힘들다는 추상적인 주장 말고 어떤 종류의 원전을 언제까지 몇 기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2050년 계획이 부재하거나, 불충분한 후보들도 보입니다. 윤 후보는 "현재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없다"며 2050년 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안 후보의 경우 기타 에너지원을 30%로 잡았는데 이게 어떤 종류인지 보충설명이 없습니다. 장 위원은 이를 지적하며 "(이것만으론) 유권자가 판단하기 힘들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독일 헌재 "온실가스 감축 부담 미래세대에 전가해선 안 돼"

우리나라에 앞서 독일 청소년들도 자국 헌법재판소에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관련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 미래 세대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며 기후변화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지난해 청소년이 승소했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당시 "자유의 기회는 세대별로 비례해 나눠져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미래 세대에 일방적으로 이전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죠.

반면 우리나라 청소년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2년째 계류 중입니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비전이 실종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어른들이 남긴 환경문제를 짊어지기 싫다"는 미래세대의 외침, 어른들은 그 외침을 언제까지 외면할 생각일까요.

윤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