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것도 없이 선거는 정치수준을 드러내는 시금석이다. 하물며 대통령 선거임에랴. 겨우 20일 남았으니 결과에 상관없이 결산할 때가 됐다 싶었는데 해외언론이 먼저 입을 댔다. ‘한국 민주화 사상 가장 역겨운 선거’, ‘추문과 욕으로 얼룩진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알면서도 남에게 들으면 더 부끄럽고 화나는 법이다. 게다가 제 일 아니라고 표현도 독하기 이를 데 없다. ‘기생충 영화보다 생생한 엘리트들의 초라한 쇼’ ‘부정부패, 무속인 스캔들과 속임수의 쓰나미’…. 이 정도면 따로 복기할 것도 없다. 그들 말마따나 ‘K팝, 오스카 수상, 오징어게임 드라마 등의 세계적 문화수출국‘으로 쌓은 국격을 대선 한판으로 홀랑 털어먹은 셈이 됐다.
더 창피한 건 ’북한의 안보 위협, 부동산 문제 등 심대한 위기현안에 대한 논쟁도 없다‘는 조롱이다. 왜 전혀 없었겠는가. 다만 정책 콘텐츠 없는 날것의 후보와, 화려한 언변에도 믿지 못할 이미지의 후보여서 논쟁이 무의미해 보였을 뿐이다. 더 솔직하자면 이번 대선 자체가 애당초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 와 부질없는 한탄이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여당의 이낙연 정세균, 야당의 유승민 원희룡 정도의 경쟁구도였다면 혹 정책선거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결함 많고 정파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강성 후보 간 대결이 되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진영선거가 됐다. “지금 이 꼴 더는 못 봐”와 “예전 그 꼴 다신 못 봐”의 죽기 살기식 이전투구에서 정책논쟁은 끼어들 틈도 없었다. 싸움의 에너지는 오직 분노와 공포다.
이런 국면에선 유권자들의 판단도 개인의 선험적 성향에 갇히게 마련이다. 짐짓 공정하게 평가한다 해도 사안마다 부여하는 가중치가 달라 별 의미가 없다. 연일 터져 나오는 희한한 스캔들과 언행에도 박빙의 구도가 별로 움직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직선제 민주화 이후 30여 년에 걸친 적으나마 정치발전의 성과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여전히 귀신도 모를 싸움의 결과는 곧 나올 참이다. 단일화 문제가 남아있지만 성사된들 순전한 정치공학적 결합이어서 정치문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는 적다. 그러므로 미세한 계가(計家) 국면에서 더 이상의 주문이나 비판은 부질없다. 두려운 것은 그 이후다. “누가 되더라도 암울하다. 이재명이 당선되면 더 폭주할 것이고, 윤석열이 이기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식물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김종인의 예측은 그래서 더 섬뜩하다.
사실 이런 정치상황이 만들어진 책임을 양 후보에게만 돌릴 건 아니다. 그런 후보들을 선출하고 그들을 극단의 진영논리로 폭주하도록 부추긴 책임의 태반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기회 될 때마다 지적했듯 대책 없는 무비판적 지지, 상대편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와 배타가 이런 선거문화를 만든 근원이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정권의 초기 지지율은 70~80%에 달할 만큼 높았다. 선거에선 지지하지 않았어도 조심스러운 기대와 성숙한 기다림이 있었다. 지금 보수층이 그토록 혐오하는 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엔 그조차도 어려워 보인다. 선거결과가 나오면 아마도 절반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상태에 빠질 것이고, 또 다른 절반은 똑같은 한풀이식 말뚝박기에 나설 것이다. 허구한 날 이래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
이미 다 마음은 정했을 터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분노를 삭이고 차분하게 치유와 통합을 생각해볼 일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정치인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진부하지만 정치수준은 언제나 국민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