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자백했지만…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무죄

입력
2022.02.17 16:25
재판부 “공소사실 충분히 입증 못해”
방송사 PD 협박 혐의 1년 6개월 선고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인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피고인이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입증할 만한 압도적인 증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제주법원 형사2부(부장 장찬수)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모(5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김씨가 자백 취지 인터뷰를 방송한 방송국 PD를 협박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의 한 폭력범죄단체 '유탁파' 행동대장급 조직원이었던 김씨는 1999년 8~9월 누군가로부터 현금 3,000만 원과 함께 '골치 아픈 일이 있어 이승용(당시 44세) 변호사를 손 좀 봐 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씨는 2~3개월 간 동갑내기 조직원인 손모(2014년 사망)씨와 차량으로 이 변호사를 미행하는 동시에 흉기를 고르는 등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모의했다. 손씨는 같은해 11월 5일 오전 3시15분부터 6시20분 사이 제주시 한 도로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

경찰은 당초 김씨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김씨의 역할과 재수사 단초가 됐던 김씨의 방송 인터뷰, 범행 현장과 흉기 모양에 대한 김씨의 구체적 진술 등에 비춰 살인죄 공모가 성립된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범행에 가담한 적이 없으며, 방송 인터뷰에서 자백 취지 발언을 한 것은 리플리증후군(허구를 믿고 거짓말을 하는 성격장애)에 의해 허황되게 진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김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는 상당 부분 가능성에 대한 추론에 의존한 것”이라며 “주범(손씨)의 범행 경위만으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1심 선고 뒤 입장문을 통해 “피고인이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범행을 자백하는 임의성 있는 진술을 했고, 그 밖에 여러 관련자들의 증언과 물증 등 제반 증거와 법리에 비춰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며 “판결문 전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심을 통해 범죄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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