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 대학 정시에서 이과생들이 인문계 학과에 대거 교차 지원해 상당수가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서울대 정시 인문·사회·예체능 계열 최초 합격자 중 절반 가까이는 이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이나 기하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서울 수험생 중 연세대, 고려대 인문계열 지원 이과생은 각각 69.6%, 45%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서강대, 중앙대, 서울시립대 인문계열에 지원한 이과생 비율이 50%를 넘었다고 한다. 수능 점수가 잘 나온 이과생이 적성이나 진로보다 서열만 따져 상위 대학 인문계열에 지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 처음 도입된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서 이과생이 유리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문·이과 장벽을 없앤다는 교육 방향에 따라 국어와 수학이 일부 선택 과목을 포함해 통합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수능 전 모의고사에서 이미 수학의 문·이과 성적 차가 두드러졌다. 서울 학생 2만 명의 수능을 채점했더니 실제로 이과생이 수학 1등급의 94%, 2등급은 86%를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문·이과 통합 자체가 문제라거나 교차 지원을 없애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고교 교육에 문·이과 장벽이 있고 이과생의 수학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시험 통합도 모자라 일부 대학에서는 인문계열 선발에 수학 반영 비율이 더 높다. 문과생의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차 지원에 이과생은 제한이 없는데 문과생은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 응시자로 한정한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 교육당국이 이런 유불리를 없애겠다며 다양한 점수 조정 방안을 강구했지만 성공적인 것 같진 않다.
문·이과 통합은 애초 수능 절대평가제를 전제로 한 정책인데 그 제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이 통합돼 벌어진 혼란이다. 통합 시험을 되돌리기 어렵다면 이런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더 정교하게 손질해야 한다. 절대평가제 전환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