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취미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회사원 이모(34)씨는 2020년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 1,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수입 자전거를 타다가 자전거 몸체가 부러지면서 넘어져 봉합 수술을 받았다. 난감한 일은 또 있었다. 제품 교환 요구가 거절된 일을 포함해 저간의 사정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렸다가 수입사로부터 고소당한 것이다. 지난달 경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씨는 회사의 대응을 비판하고 있고, 회사는 이씨가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씨는 2020년 10월 31일 이탈리아 자전거 브랜드 제품을 타고 경기 양평군 유명산 일대 포장도로에서 라이딩을 하고 있었다. 사고는 내리막 주행 도중 자전거 포크(fork) 부위가 부러지면서 일어났다. 포크는 자전거의 앞바퀴와 핸들바를 연결해주는 축이다. 이씨는 넘어지면서 몸 오른편에 창상 및 아스팔트 마찰로 인한 화상을 입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아홉 바늘을 꿰매는 봉합술을 받았다.
이씨의 자전거는 '명품'으로 통하는 해당 브랜드에서도 최상위 모델로, 2017년 봄 1,100여만 원에 구매한 제품이다.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의심한 이씨는 국내 수입사인 A사에 사고 자전거를 제출하고 같은 모델 새 제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A사는 이탈리아 본사가 자전거 사진을 받아보고 제조상 결함이 아니라고 답변했다며 교환 요청을 거절했다. 이씨가 자전거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라이딩 도중 바퀴가 빠졌고 포크는 이후 도로에 부딪혀 파손됐을 거란 게 회사 측 주장이었다.
이씨는 한국소비자원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조사가 외국에 있는 경우 수입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씨는 그해 11월 26일 온라인 자전거 커뮤니티에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회사 대응에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 "블랙박스가 없어 명확한 증거 영상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자전거를 판매하는 회사는 AS(애프터서비스)가 안 된다고 하면, 저는 어찌하나요"라고 적었다.
A사는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서 보상을 해주지 않은 걸로 오해하게끔 상황을 만들었다"며 이씨에게 글을 수정하고 사과문을 올릴 것을 요구했다. 이씨가 거절하자 회사는 같은 해 12월 28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이씨를 고소했다. A사는 홈페이지에 사고 원인이 이씨의 정비 부주의에 있다면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고객님을 형사 고소하기 이르렀다"고 알렸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1년여간 수사를 거쳐 지난달 11일 사건을 불송치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이씨의 글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글의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인 사실과 합치되므로 거짓이라고 볼 수 없다"며 죄가 안됨 결정을 내렸다. 업무방해 혐의엔 "피의자의 행위는 허위사실 유포라고 볼 수 없어 범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혐의 없음 결정을 했다. 이씨는 "경찰이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수입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이 났는데도 회사는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A사는 개인적 부주의로 빚어진 사고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사는 한국일보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수사 결과와 제조상 결함 유무는 별개의 문제"라며 "본 브랜드를 이용 중인 분들에게 논란과 불안을 드린 점에 대해 사죄를 드려야지, 사실과 다른 글을 기재한 소비자에게 사과할 일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