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다.
붓으로 시를 쓰듯 작업해온 중견화가 도윤희(61)의 화폭에선 폭죽 터지듯 꽃무더기가 흐드러진다. '미술계 아이돌' 문성식(42)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한 일상의 소소함은 따뜻한 기운을 뿜어낸다. 봄을 부르는 두 사람의 전시가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윤희는 순간 휘몰아치는 감정을 '색'으로 붙잡아냈다. 물감으로 그리고 칠하는 대신 흘리고, 뭉개뜨리고, 켜켜이 쌓았다. 아예 손가락으로 캔버스를 뚫어버리기도 했다. '도윤희 작품이 맞냐'고 되물을 정도의 파격 변신이다. 도윤희가 베를린과 서울에서 완성한 신작 40여 점을 내건 전시 '베를린'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오는 27일까지 열린다.
새로움을 갈구하던 작가는 2012년 베를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색 사용을 억제하고 주로 흑연으로 세포나 화석의 단면, 뿌리가 연상되는 이미지를 그리던 그의 작업도 일대 변화를 맞았다. '살아있는 얼음', '어떤 시간은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등 절로 한 편의 시가 되는 작가 특유의 문학적 제목도 과감히 버렸다. '무제'가 붙은 그의 신작들은 형형색색의 꽃다발이나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 제목인 '베를린'은 도윤희가 작가로서 전환점을 마련한 장소이자 60대에 접어든 지난 여정까지 모두를 기호화한 단어다. 7년 만에 개인전으로 돌아온 작가는 "베를린은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편안하게 해준 도시"라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보다는 좀 더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일찍이 그는 자신의 작업을 "현상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번 작업에 대해서도 그는 "안에 오랫동안 축적돼 온 내면 풍경을 하나씩 꺼내는 것, 그것으로 내 실체를 알아가는 것"이라며 "추상은 환상이 아닌 인식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2017년 부산에 터를 잡은 문성식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조각을 그린다.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일상도 그에겐 재료다. 작가가 살고 있는 달맞이길의 유명 식당에서 본 근사한 장미를 기본으로 한 얼개에다 청사포의 흰 장미를 섞어 그리는 식(대형 장미 연작 '그냥 삶')이다. 능수벚꽃, 매화, 목련 등 쌔고 쌘 꽃과 나무부터 경북 김천 고향집 정원을 가꾸는 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다니는 청년들, 부동산을 보러 다니는 부부까지 지금, 여기서,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을 화폭에 옮긴다. 작가는 "어떤 것은 아름다워서, 퍽퍽해서, 의미심장해서...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그린다"고 했다. 그가 포착한 풍경의 소소한 기록 100여 점을 내건 전시 'Life 삶'은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다.
일상의 한 편린까지 놓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다정하다. 특유의 작업 방식은 작품에 온기를 더한다. 그는 연필을 주로 쓴다. 캔버스에 종이죽을 발라 표면이 그슬그슬한 상태가 되면 그 위에 유화를 올리고, 연필로 긁어낸다. 문성식에게 연필은 "모든 장식을 배제하고, 생각과 의도를 드러내주는 가장 미니멀하면서 고유한 도구"다.
때로는 연필 대신 칼로 긁어 스크래치를 내거나 마지막 단계에서 채색을 하기도 한다. 전시장 한쪽에서 봄내음을 뿜고 있는 파스텔톤의 작품 '세드엔딩', '정원과 나'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성식은 "반 젤리 상태 유화 위에 내가 (연필을) 휘두르는 궤적이 고착된다"며 "내가 이 캔버스 앞에 있었음이 증명되면서 플랫한 종이보다 더 실존적 느낌이 생긴다"고 했다. 휘두름으로써 가장 '문성식다움'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다.